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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스티발 - 변태는 결코 혼자 즐기지 않는다

효준선생 2010. 11. 19. 01:28

 

 

 

 

 

 

 

變態를 해야 살 수 있는 곤충의 경우 그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숙명과도 같은 통과의례다. 그런데 인간에게 적용시키면서 심지어 이 자연미 물씬 넘치는 단어는 욕처럼 변해버렸다. 대체 이 변태라는 말에 담긴 뉘앙스는 왜 생겼을까


변태의 반대말을 정상이라고 한다면 그건 변태의 상대성에 반하는 말이다. 변태가 성립되려면 그것에 대응해주는 사람이 존재해야 가능하다. 혼자서 아무리 “변태적 행위”를 일삼아도 누가 그것에 대해 변태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겠나. 간혹 스스로에게 내가 혹시 변태인가라고 자문한다면 그건 아주 “정상”적인 상황에 있는 경우다.


대개 이정도 관점을 가지고 있는 듯 싶다. 타인에게 자신만의 성적 취향을 강요하며 스스로의 만족을 얻으려는 행위, 변태의 일반적인 정의다. 혼자서 아무리 극한의 변태행위를 하며 살아간다고 해도 그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면 혼자서 코를 파고, 방귀를 뀌는 생리적 현상과 같은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어차피 혼자 알아서 노는 건데.


바바리맨이라는 존재가 있다. 특히 여학교 앞에서 바바리라는 큰 외투만을 걸친채 불특정 다수의 이성앞에서 자신의 남성성을 자랑하고픈 욕구를 가진 남성. 그런데 그런 경우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자지러지듯 소리를 지르면 못볼 것을 봤다며 질겁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보고 나면 이런 얘기를 한다. “난 그냥 무시했어, 그게 그들에게 가장 큰 모욕이거든” 자기를 알아봐주지 않는다면 변태행위는 그야말로 무의미 한 것이다라고.


맞는 말처럼 들린다. 영화 페스티발은 변태에 대한 일반인의 속내를 여과없이 보여주려고 애쓴 충격적(?) 작품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스크린에 변태적인 장면을 묘사할 수 있냐고 하지만 이 영화는 본격 성인 에로물은 아니다. 그렇다고 코미디도 아닌 듯 싶다. 누군가는 변태라고 비꼬지만 우리 속마음 깊숙한 그곳에 자리한 잠재적 변태 심리를 좀 끄집어내자며 찍은 사회성 짙은 영화로 보인다. 물론 이 부분에서는 감독을 신뢰해야 하는 전제가 있지만서도. (어느 정도 신뢰한다)


이해영 감독이 주선한 “변태”행위에 동참하는 인물은 일곱이다. 개중에는 덜 변태스럽거나 위의 정의에 따르면 변태(류승범, 오달수는 변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혼자 그렇게 사는 것 뿐이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가 아닌 경우도 포함한다. 그들은 수시로 교체출연하면서 변태의 다양한 유형을 보여주며 “어때? 내가 변태스럽나? 당신들은 이런거 생각해본 적 한번도 없나?” 며 자꾸 관객들에게 수신호를 보낸다.


첫 장면에서 엄지원과 신하균 커플이 등장하는데 이 장면으로 이 영화에서 말하는 변태의 정의는 대략 다 나온 셈이다. 좀 자극적인 행위를 마친 듯 한 신하균은 제멋에 겨워 남성성을 한껏 뽐내며 만족하지만 엄지원의 반응은 그렇하지 못하다. 무엇을 말하나.

또 영화 중반까지는 멀쩡한 어묵장사로 나온 류승범이 알고 보니 반려돌을 끼고 산다더라 하는 것도 어쩌면 변태란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성사되지 못함을 말해주는 것으로 보였다.


소위 변태의 범주는 무엇이 있는지도 소개하는 시간이 있다. 특정 물건에 집착하는 페티쉬, 가학과 피가학(묶어서 SM.) 행위정도가 영화에 등장하는데 그 수위는 스스로 조절했음에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민망할 수 있어 보인다. 성인용품의 물품들이 마치 장난감처럼 작동하거나 아직은 미성년자로 보이는 여고생의 속옷이 거래가 된 다거나 하는 것은 뉴스나 가십으로 이미 들었음에도 이를 실제로 보니 뻘쭘하기 그지없다.


술자리에서 아주 친한 친구들과 음담패설조로 떠들던 이야기들, “누가 그러던데” 라면서 전해주는 야한 이야기들, 혹은 인터넷이나 잡지등을 통해 듣고 보던 그런 류의 이야기들이 그 넓은 스크린에 펼쳐지고 모르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솔직히 쉽지는 않은 일이다. 아무래도 조금 변태스러운 장면들은 우리들 꿈속에 등장했을때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 깨면 기억날둥 말둥하며 참 별스럽네 하며 금새 잊혀질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