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검우강호 - 부부는 알고보니 무림고수

효준선생 2010. 10. 18. 01:09

 

 

 

 

영화 검우강호를 보기 전에 시대적 배경을 조금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명나라 주원장은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가 귀족들의 부패와 해이를 틈타 기병을 해 정권을 찬탈한다. 그는 원의 수도였던 지금의 북경을 버리고 남경에 새로운 도읍을 둔다.


그는 매우 의심이 많았던 사람으로 건국초기 공신들을 하나 둘 숙청했고 주변에는 남자 구실을 하지 못하는 내시, 즉 태감들만 득시글거렸다. 이들은 곧 궁궐의 권력을 탐하게 되었고 개중에는 상당한 재력가가 되어 명나라 존속기간중 엄청난 권세가로 떵떵거리며 살았던 자도 많았다.


영화 검우강호는 바로 14세기 말,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알리는 즈음, 남경성에서 있었던 그럴 듯 한 이야기로 만들어진 영화다. 서역에서 온 달마의 시신을 거두면 제 아무리 병신이라도 온전한 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며 주변의 흩어진 권력도 모두 손에 넣게 된다는 설은 많은 이들을 현혹하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가장 관심을 보인 그룹이 바로 흑석파다.


전륜왕은 달마의 시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하의 심복들을 부린다. 세우, 뢰빈, 채전사가 그들이다. 그런데 세우는 시신의 일부만을 탈취해 도망을 가고 그 과정에서 불법을 연마하는 육죽을 만난다. 짧은 시간이지만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육죽의 충고를 받아들인 세우는 이른바 페이스 오프를 통해 전혀 딴 사람으로 거듭나고 남경성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한편 흑석파 일당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장아생은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그 역시도 성형수술을 해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져 그 역시 남경성으로 들어온다.


영화의 초반은 조금 정신없이 휘몰아 치는 바람에 누가 누군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영화가 본 궤도에 오른 것은 한국의 정우성이 등장하면서부터다. 그의 연기력이 출중하거나 맡은 배역이 대단해서가 아니었다. 중국어를 어렵사리 구사하는 그가 맡은 배역은 우편배달 혹은 택배일을 하는 인물이다. 거기에 좀 얼빵한 모습으로 보인다. 하지만 눈치 빠른 관객들은 그가 영화 후반부 대단한 단서를 쥐고 있는, 양자경에 이은 제2의 주인공임을 알아챌 수 있다.


영화의 중반이후에는 노골적으로 연애 스토리처럼 흐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간간히 싸우는 장면도 등장하지만 솔직히 조직을 배반한 인물을 쫒고 또 살해하려는 암살자의 모습들이라고는 좀 어설퍼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시말해 이 영화는 비록 전륜왕이 달마의 시신을 차지하는데 비중을 두고 있으면서도 개개의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그들의 소회가 제각각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성안에서의 결투신에서 채전사가 말한다. "세우는 새 사람으로 살고 뢰빈은 전륜왕의 재산을 모두 가지라"며 전륜왕과의 대결을 청한다. 이거야 말로 강호에서는 있을 수 없는 배신이 아닌가. 다시 말해 그들은 흑석파의 괴수 전륜왕의 심복이 아닌 셈이다. 그냥 용병일 뿐이다. 이 때문에 전륜왕의 입지난 체면이 깎인 것이 사실인데 그럴 만한 이유는 바로 맨 앞부분, 당시의 사회상을 설명하면서 적시해놓았다.


많지 않은 캐릭터중에서 대만의 금잔디 서희원(중화권에서는 大S로 알려짐)이 맡은 엽탄청이 매력적이면서도 아쉬웠다. 남편을 죽이고 전륜왕에 의해 단기간에 암살자가 된다는 설정은 다소 억지스러웠고 그녀의 무기도 다른 것에 비하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착용한 엣지있는 의상은 와다 에미의 작품이었고 칼과 검이 난무하는 좀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가 보여준 웃음과 속살은 적지 않은 남성팬들의 마음을 흔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복수를 꿈꾸던 한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마저 해치려 한 한 여성에 대한 연민과 갈등을 기본 테마로 하고 있는, 어찌보면 무협물을 빙자한 애정물이 아닐까 싶었다. 최근 한국에 선보이는 중국 영화의 寡少에 답답한 지라 박한 평을 하고 싶지는 않다. 흔히 네티즌들이 중국영화만 대하면 별로 고민도 없이 툭 던지듯이 말하는 “중화사상의 홍보”도 거의 없고, 액션장면은 날이 갈수록 훌륭해 지는 중국영화에 경외감마저 느끼는 영화 한 편을 기분 좋게 보고 나왔다는 말로 마무리 하고 싶다.


끝으로 한국배우 정우성의 중국어는 성조(중국어 특유의 4개의 억양)에 좀 힘이 떨어진다는 것 말고는 크게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통역 스탭의 공으로 보였다. 단, 마지막 묘지앞에서 양자경에게 했던 부분은 컨디션 탓인지, 대사가 길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우물우물하는 정도가 확연해 보였다. 또 하나 이 영화는 정통 중국영화임에도 왜 또 영어권 전문 번역사가 번역을 맡았는지 속내를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영어로 된 대본을 보고 번역을 한다고 해도 중국어 전용명사는 어찌할 도리가 없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