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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라없는 5일 - 사랑의 또 다른 말은 배려(강추)

효준선생 2010. 10. 12. 00:11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닌 무관심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에 죽고 못살 것 같아 결혼을 택했지만 젊은 부부의 그런 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호세와 로라는 평범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로라에게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 노라없는 5일은 이야기 토대가 죽음과 장례라는 상당히 무거운 소재로 이루어져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처럼 울고불고 곡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아니 누구하나 슬픔의 눈물을 철철 흘리지도 않았다. 슬프지 않아서는 아닌 듯 싶었다. 노라의 전화는 자신들이 알고 지내던 적지 않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자신의 마지막을 지켜봐줄 가족과 지인들 사이에서 그 마지막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제 문제는 남은 사람들에게 있다.


호세, 이미 노라와 이혼한지 20년이나 되었지만 노라의 마음속에 호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이혼을 했음에도 길건너 아파트에서 따로 살며 서로가 망원경으로 서로의 거처를 지켜보는 습관, 그리고 전 부인임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전 부인의 아파트 열쇠를 가지고 다니는 호세. 그들 사이의 벽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시작은 사랑보다 큰 무관심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영화는 두 노년 남녀의 사랑과 결별만을 부르짖지 않았다. 멕시코 특유의 종교의식의 차이도 절묘하게 삽입시켜 놓았다. 호세의 아들 루벤은 유대교의 랍비쪽 사람과 결혼했고 그쪽 건축물을 설계해주면서 처가의 간섭을 받는 처지다. 하지만 카톨릭의 교율은 유대교와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어느 종교의 장단점을 꼬집는 것은 아닌 듯 보였다. 극단적인 사례가 유대교에서는 자살자의 무덤은 일반 자연사한 사람과 함께 쓸 수 없다는 대목에서는 혹시 반유대 사고를 보여주나 싶기도 했다.


호세는 자신이 모르고 지내왔던 20년동안의 노라의 이야기와 두 개의 종교가 보여주는 “귀찮은” 차이를 봉합하는 노력을 경주한다. 바로 이게 이 영화의 큰 줄거리다. 텁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인 호세는 겉으로는 깐깐한 할아버지처럼 보이지만 손녀들에게는 매우 유머러스하게 군다. 사진 몇장 때문에 아내의 정신병을 돌봐준 의사를 의심하기도 하고 유월절을 지내는 랍비에게 금기시하는 돼지고기가 들어간 피자를 권하고 아내가 죽기 전 준비해 놓은 냉장고 반찬통의 레서피를 죄다 바꿔 놓기도 하는 심술궂기도 한 평범한 남자일뿐이다.

 

 

 

 

 

영화속에서 음식은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영화의 시작부분, 맛깔스러워 보이는 음식들의 재료들이 하나 둘씩 준비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중간에 등장한 파출부 아줌마의 요리솜씨도 배를 고프게 한다. 심지어 기도문을 읽어주러온 젊은 랍비 마저 음식만들기에 동참시키는 것을 보면 로라는 음식을 매개로 그동안 소원했던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한데 봉합시키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집안 구석 구석 로라가 남겨놓은 일종의 유언들, 각자에게 전해지면서 그제서야 떠난 이를 그리워한다. 과연 로라는 전 남편이자 유일하게 사랑했던 남자 호세에게 어떤 편지를 남겨 놓았을까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완벽하게 이 세상을 떠날 닷새의 시간적 여유를 어떻게 계산해 둔 것일까? 


점차 독거노인이 늘고 있는 세상, 가족이 아무리 많아도 늙고 병들면 아무도 관심조차 주지 않는 삭막한 세상, 자신의 마지막을 무기로 남겨진 사람들에게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의미를 알게 해준 노라처럼 살려면 얼마나 더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웰빙 못지 않게 웰다잉도 중요한 시대를 살면서 한번쯤은 반추해볼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노라없는 5일은 쓸쓸한 가을이 점점 깊어지는 이즈음 볼 만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