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심야의 FM - 네가 한말을 책임지란 말야(강추)

효준선생 2010. 10. 10. 01:01

 

 

 

영화 심야의 FM을 시사회도 아니고 정규 개봉일도 아닌 주말 프로모션 기간에 보았다. 그만큼 창졸지간에 본 영화라 사전정보는 없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2시간의 라디오 방송시간안에 유괴된 딸을 사이코 패스로부터 구해낸다는 액션 스릴러물이라는 정도, 거기에 주연이 수애와 유지태라는 것뿐, 사실 이렇게 적었어도 영화를 보고 나니 할 말은 다 한 셈이다.


한국 스릴러물은 정말 진화중이라는 느낌을 영화 심야의 FM을 보는 내내 받았다. 그건 잘 만들어진 성찬을 와구와구 먹어 가면서 테이블에 차려진 다른 음식을 눈여겨보는 포만감 같은 것이다. 이미 입속에 들어와 있는 음식물은 그동안 만들어졌던 다른 스릴러물이라면 먹고 있음에도 내 눈을 현혹하는 음식물은 바로 오늘 본 영화 심야의 FM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스릴러물이라면 갖추어야 할 것들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비록 이미 너무 많이 노출되어서 신비로울 것 없는 것들임에도 영화의 러닝타임동안 관객들이 땀을 쥐고 딴 생각을 못하도록 만드는 재주 하나만은 인정해도 좋을 듯 싶었다. 시작부터 끝나는 시점까지 단 한번 숨을 크게 내쉰 부분은 한 번 정도였다. 범인이 활보를 치는 순간에 디제이 고선영(수애 분)이 딸의 사진을 보며 웃는 장면, 그 장면은 이 영화의 결말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몹쓸 짓을 당할 것 같은 여주인공의 동생과 아이들의 출현, 그리고 범인의 전형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팬, 피디가 던지는 이상한 말들, 사건은 한 여인의 죽음에서 시작해 디제이 부스안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이야기는 부스와 또 다른 두 곳의 공간안에서만 일어난다. 범인은 이야기 시작때부터 밝혀 놓았다. 관객들은 범인이 누구냐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디제이 고선영과 범인의 대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에 대해 시선을 집중시켜나갔다. 하도 흉흉한 영화들이 많다고 하기에 더럭 잔인한 장면이 나올까 마음의 준비도 했지만 그런 점에서는 이 영화는 상대적으로 착한 영화다.


며칠전 모 방송국 앵커가 현직 대통령의 양배추 김치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을 시덥지 않다는 투로 매조지 한 일이 있었다. 또 몇 해전 모 방송국 앵커의 클로징 멘트는 촌철살인의 위트라고 해서 매일같이 어록으로 만들어져 소개된 일도 있었다. 그들은 앵무새일뿐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던 때도 있고 시대정신의 발로라고 높이 평가받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뱉어낸 말에 상상외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이 영화의 단서는 바로 그런 “내뱉은 말”이었다. 영화속에서 고선영은 그야말로 말로 밥벌어 먹는 사람이다. 그녀의 딸은 반대로 말을 할 수 없는 환자다. 역설이지만 하고픈 말을 하지 못하는 딸을 가진 말잘하는 엄마, 그녀는 누군가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을 지우려고 하는 상황에 부딪친 것이다. 엄청난 반사회적 행동에도 스스로는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여기는 한동수(유지태 분)와의 충돌, 사적공간(고선영의 집)과 공적공간(라디오 방송국)에서의 충돌, 거기에 남자는 고선영에게 수시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만든다.

 

 

▲ 영화 끝나고 나중에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하나 해도 좋을듯...

 

 

 

▲ 광기어린 사이코 패스역에 제법 잘어울리는 유지태...무서웠다.

 

 

영화 심야의 FM은 상당히 영리한 스릴러물이다. 다 알 것 같은 결과로 치달으면서도 지속적으로 게임을 던지는 수법, 여타 스릴러물이 갖는 “뒤로 갈수록 하락하는 긴장감”을 확실하게 끌어 올리는 힘으로 작용했다. 이 영화에는 적지않은 공권력과 언론의 힘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유괴범의 분노만 불러일으키는 반작용만 일삼는다. 고선영은 정말 힘들어 보였다. 마지막 방송을 잘 해내겠다는 애청자와의 약속을 지켜야만 했고 유괴범과의 지리한 사투도 연출해야 했고 경찰과 방송국 간부들과의 실랑이에서도 이겨야 했으며 직접 차를 몰고 나가 카 체이싱까지 선사해야 했다. 거기에 아무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지막 총질까지, 그걸 모두 소화해낸 수애와 사이코 패스 역할에 그 만한 사람 없을 것 같은 유지태라는 배우의 열연에도 좋은 평가를 내려주고 싶다.


인사동 스캔들때 스크린에서 본 최송현이 맞나 싶게 수수한 이미지로 다시 등장한 그녀, 부산 사투리를 유려하게 사용한 그녀는 이제 조금씩 자기 자리를 찾아가나 싶었다. 전직 아나운서 출신으로 아나운서 출신 디제이 역할이 탐도 났을 법 하건만 수애를 보조하는 역할로 만족한다. 개성있는 조연부터 시작해 그녀 역시 언젠간 좋은 배우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화 후반부 워낙 거세게 몰아붙이는 스릴러 영화의 특성상 수애와 유지태에게 포커스가 맞춰지는 바람에 빛을 잃었지만 떡대역의 마동석과 함께 소소한 볼거리를 제공해 준 것은 사실이다.


전체적인 얼개와 치고 빠지는 진행상의 템포가 좋아서 딱히 흠잡을 것이 없는 깔끔한 스릴러물, 나쁜 놈은 결국 그렇게 간다는 상투적 결과가 아쉽긴 하지만 험한 세상에 그런 인간이 득을 보게끔 할 수는 없지 않나? 이 영화가 무엇 때문에 심의에서 한 번 반려되었는지 눈치 채긴 어려워 보였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덴 기억이 있다면 그다지 놀라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참”한 영화다.     

 

 

 

▲ 수애의 동생으로 나오는 신다은, 얼마전 연극 클로저에서 본터라 반가웠다. 하지만 유지태때문에...쩝 

 

 

▲ 오랜만에 보는 최송현, 마동석과의 너스레 장면, 연기가 많이 좋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