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 - 한 남자의 옹골찬 복수극

효준선생 2010. 9. 28. 00:53

 

메이드 인 차이나의 딱지 달고 선보이는 이른바 다피엔(大片) 중국영화의 힘이 무섭다. 그동안 중국영화는 그 역사 만큼이나 방대한 스토리텔링의 짜깁기에 의존해 재미는 있지만 창의력과 영화 제작의 기술력은 조금 딸리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2006년 칠검을 위시해 시작된 소위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이 속속 만들어지면서 이제는 헐리웃 제작영화들의 그것과 비견할 정도가 되었다. 한국 영화팬들은 알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런 종류의 영화 한편이 중국에 걸리게 되면. 아니 걸리기 훨씬 전부터겠지만 가장 많은 눈동자가 접하는 영화도 바로 이들 영화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에 환호하고 박수를 보내주었으며 중간 정도의 영화에도 수십만은 보장해주는 든든한 시장이었지만 이웃하고 있는 중국에서의 실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시장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게 극장에서만의 집계가 못되어서 그렇지.


아무튼 든든한 시장은 중국의 영화 감독, (제작자로서는 속이 타겠지만) 은 신나는 조건에서 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인구수에 비례해 많지 않은 메이저급 감독들은 돌아가면서 2~3년에 한 개 정도 대작영화를 찍고 그 영화들은 최소 수천만명의 “이미 본 영화팬”들을 보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한국에 와서는 이내 시들해진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이미 언급한 다양한 스토리텔링과 화려한 볼거리, 특히 헐리웃에서도 배워간다는 지존의 무술액션까지 가미했으면서도 많은 호응을 받지 못하는 것은 중국 영화 특유의 허풍떨기에 지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역사적 배경을 안다면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시대극이라면 왠지 그때가 그때인 것 같은 의상과 주인공은 물론이고 여자배우까지도 무술의 달인이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미는 설정등. 그리고 복수가 복수를 낳는 강호의 정의. 얼마나 많은 아류작을 만들어 냈나.

게다가 최근의 중국영화를 보는 한국팬들의 시선도 곱지많은 않다. 무슨 근거인지는 몰라도 툭하면 중화사상의 득세니 뭐니 딱지부터 붙이는 것에 익숙해져있다.


현재 중국에서 들여오는 많은 블록버스터들은 한결 같은 공통점이란 이런 것들이다. 그래서 보면 즐겁지만 여전히 헐리웃 영화의 다양성있는 그것보다는 못하고, 예전보다 떨어지는 스타 마케팅의 힘이 한국 관객들에게는 글쎄라는 의문부호를 달게 하고 있었다.

 

 

 

 

 

영화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은 우선 방대한 스케일에 많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그건 스크린에 펼쳐지는 엄청난 물량공세로 만들어지는 눈요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한 남자의 복수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지, 그리고 그게 단순히 칼로 원수를 쳐서 죽이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에서 놀라웠다. 중국속담에 사나이의 원수는 10년이라도 늦은 게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 한번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면 10년이 흘렀어도 그 마음은 변치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영화 적인걸을 도형으로 묘사해 보자면 크게 원형을 그릴 수 있다. 그 외피에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즉, 유일무이의 여자 황제였던 무측천의 황제 즉위가 가능할 것인지가 차지하고 있다. 그 부분은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남성 위주의 세상에서 남편을 대신해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그녀의 야망은 당시 사회적 편견과 맞물려 그녀 스스로도 상당히 고민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가 강해지기 위한 방법으로 그녀의 편을 만들어 두려고 하며 나중에는 예전 자신의 집권을 반대해 귀양을 가 있는 적인걸까지 중용하기에 이른다.


적인걸은 이른바 용병일수도, 혹은 미끼일 수 도 있었던 신분이다. 그럼에도 그의 처세는 상대적으로 무척 당당해 보인다. 최고 권력자의 부름을 받았음을 제시해 힘을 과시하기도 하고 스스로의 천재적 판단력과 뜻밖의 무술 실력에 이 영화의 결말을 향해 치닫는 동력을 갖게 한다.


그리고 그 원안을 소용돌이 치게 하는 인물이 바로 上官靜兒(이빙빙 분)다. 물론 중반이후 그녀가 사건 해결의 키를 쥐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좋은 캐릭터이기도 했고 무측천(유가령 분)과 적인걸(유덕화 분), 그리고 배동래(등초 분) 사이에서 기묘한 줄타기를 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추리극을 표방하기에 사건 현장에서는 이런 저런 추정이 난무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인체의 자연발화로 인한 사망사건인데 현대의 상식으로는 절대 풀 수 없다. 여기서도 여타 중국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허풍이 등장하는데 영화속 설정이 매우 사실적이라 그럴 듯 하고 상당히 자극적인지라 눈길이 간다.


영화에서는 모두 통천부도, 귀시장, 무극관등 세 군데의 장소에서 큰 사건과 그에 걸맞는 액션이 선보인다. 세트와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되며 그 규모에서 압도적인 효과를 내며 이런 장면들은 인물위주의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극장만의 장점이 부각된다.

 

 

 

 

 

 

오랜만에 서극 감독의 작품으로 완성된 적인걸, 단순히 치고 받고 싸우다 끝나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 머리를 써서 범인을 뒤쫒고 그안에서 많지는 않지만 약간의 멜로도 느낄 수 있는, 간만에 추천해보는 중국영화 되시겠다. 중국역사에 관심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 영화는 불교와 도교적 색채가 물씬 나는 영화다. 통천부도는 불교의 불상처럼 보이며 귀시장과 무극관은 도교의 상징물이 가득차 있다. 거기에 당나라때로 보이게끔 서역인(원래는 아랍인이다)들도 다수 배치한 것도 소소한 볼거리다.


그나저나 인체발화의 비밀은 무엇이며 이 사건의 총책임자는 누구일까? 정말 궁금하다면 바로 극장으로 가서 확인해 볼 일이다. 힌트를 주자면 절대로 그 명성에 그 정도 비중의 배역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배우가 하나 등장한다. 그를 눈여겨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