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소라닌 - 청춘, 그 아스라한 이름이여

효준선생 2010. 9. 8. 01:50

 

 

 

 

 

 

스무살 남짓의 청춘 남녀에게 사랑은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 같을 수도 있고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세찬 물줄기 같을 수도 있겠다.


타네다와 메이코는 학교 동아리에서 만나 동거를 하는 중이다. 그들에게는 경제적 어려움과 부모의 동의를 받지 못한 함께라는 사실이 현실과 부딪쳐 곤란을 겪을 만도 하지만 그게 지저분하거나 견디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이 영화가 그런 현실을 말하는게 아님을 대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사랑해서 떨어져 있기 싫어서 함께를 선택했지만 이내 다가오는 청춘들의 가난함, 그로인해 말싸움에서 시작해 결국 그렇고 그런 파국적 결말이 현실이라면 이들 커플의 불안감은 현재가 아닌 미래에 있었다.


메이코는 회사원이다. 2년차라는 딱지를 달고 있지만 벌써 신입여사원에 밀려 눈치를 받는다. 타네다는 더 안좋은 형편이다. 잡지사에서 편집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그건 정말 그가 원하는 일이 아닌 듯 싶다.


둘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꿈꾸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은 되지만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가 있다. 바로 밴드활동이라는 음악, 타네다의 친구들은 메이코에게도 살갑게 대해주고 그건 앞으로의 일에 대한 전조였다.


잠시 방황하는 둘, 조금씩 헤어짐이 가까워져 옴을 직감하지만 그건 그 둘이 각각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렇게 메이코 곁을 떠나는 타네다.


영화는 한참을 서성거리다 이 부분에서 방점을 찍는다. 죽은 타네다가 정말 하고파 했던 일, 바로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하고 자신이 작곡한 노래 소라닌을 부르는 것이다.


음악이라면 해본 것 같지 않은 메이코에게 무슨 용기와 힘이 생긴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나서라면 그가 만진 기타는 쳐다도 안볼 것 같은데, 그녀는 기타를 잡는다.


영화 소라닌은 청춘 멜로물이다. 사랑하는 어린 커플도 나오고 한 사람은 죽는다. 그렇다고 눈물이 홍수를 이루는 그런 신파는 아니다. 청춘의 풋풋함이 죽는 그 순간에도 배어나오고 사랑하는 사람을 대신해 소기의 목적을 이루고 나서도 눈물은 없다. 친구들과 환호하는 그녀의 모습이 당차고 그래서 보기 좋았다.


일본 영화 특유의 생활속에서의 꼼꼼한 스케치가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조금만 줄였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도 해본다. 구혜선을 많이 닮은 여배우 미야자키 아오이, 강타를 조금 닮은 것 같은 코라 켄고의 만남은 큰 갈등 구조가 없었음에도 눈이 시원하다.


그들의 배역 이름인 타네다(種田)와 메이코(芽衣子)는 각각 심어 키우다. 싹이라는 뜻이다. 불의의 사고로 청춘의 싹을 제대로 키워보지도 못했지만 순수하고 여린듯한 그들의 사랑은 또다른 표현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