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프레데터스 - 그들, 정글에서 길을 묻다

효준선생 2010. 8. 31. 01:03

 

 

 

 

 

 

좁은 공간에서 서로가 서로를 해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생존의 게임이 펼쳐졌다. 누구인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이름도 모른다. 단지 실체를 알 수 없는 적을 물리치기 위해 잠시 힘을 합칠 뿐이다.

영화 프레데터스는 위의 공식에 충실하게 부합하려는 이유가 있다. 인간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치는 순간에는 상당한 시너지를 얻을 수 있지만 상대가 자신을 해치려는 낌새를 알아차리면 곧바로 피아의 구분을 하지 못한다는 것. 영화는 인간은 좁은 공간에 두고 그 실험을 지속하고 있었다.


물리쳐야 하는 적은 괴물가면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왜 인간을 해치려는 지 설명도 충분치 않고 단지 사냥감으로서의 인간을 사냥한다는 것 뿐이었다. 그러니 사냥감은 사냥당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칠 것이고 사냥꾼은 인간을 포획하거나 살육하기 위해 더욱 거칠어져야 했다. 그러나 그것뿐이 아닌 듯 했다.


대사에도 잠시 언급되지만 인간은 인간에게 프레데터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자신보다 약한자, 그를 없애야 자신이 생존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바로 죽지 않고 부상당한 사람들을 일고의 가치도 없이 죽여버리는 모습이 그러하다.

주인공은 덫에 걸려 다친 동료와 함께 가자고 하는 여자에게 동정심유발이 바로 괴물이 노리는 인간의 약점이라고 한다. 동정심마저도 깔끔하게 버릴 수 있어야 자신은 산다고 외치는 그, 어쩌면 그 스스로가 프레데터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 장면 간신히 목숨을 구하고 나서야 서로의 이름을 알려주는 남녀 주인공, 그들 머리위로 처음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낙하산이 떨어지고 있다.  살아남은 자들은 정글 경제주의 속에서 남을 짓밟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현대인들처럼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할까. 프레데터는 바로 그들이었다.


8명으로 시작해 한명씩 죽게 되는 게임, 과정이 반복되고 비중이 약한 자들부터 처치되는 모습은 밀림이라는 공간을 배제한다면 매우 익숙한 시츄에이션이다. 그런데 눈여겨볼 만한 것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무기들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면서도 그게 가능한지 모르지만 다들 자신들에게 맞는 무기를 하나씩 들거나 매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 야큐자로 나온 배역이 들고 있는 권총이 빈약하다 싶었는지 막판에 사무라이 칼을 하나 들려주었던 것, 의사로 나온 배역은 직업에 충실하게 야생에서 구할 수 있는 독초에서 힌트를 얻는 것.


이걸 현대인에게 치환해 봐도 좋을 듯 싶다. 당신이 이 밀림속 정글에서 자신을 노리는 프레데터를 피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무기는 무엇인가. 돈인가 권력인가. 아니면 맨 손바닥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