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피라냐 - 귀신보다 무서운 식인 물고기

효준선생 2010. 8. 25. 02:11

 

 

 

 

 

 

새를 무서워 한다. 만지는 것은 당연히 할 수 없을 정도며 가까이 새가 날아오르는 것만 봐도 질색이다. 아마도 어렸을 때 본 히치코크의 새라는 영화때문이라고 한다면 웃음거리가 될까

어릴때 개에게 물린 아이들은 다 커서도 개를 피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사람보다 덩치도 작은 동물에게 공포심을 갖는 것은 대개 유아기 시절 자신이 오감으로 체험했던 막연한 공포감이 내재해 있다가 다시금 떠올라서가 아닐까.


언제 보았는지 모르지만 생생하게 장면들이 떠오른다. 흑백영화였는데 평화의 상징같았던 새들의 인간을 향해 무자비한 공격, 그 공격에 사람들은 쓰러지고 피를 흘리는 모습은 잔인하기 이를데 없었다. 당시에도 브라운관 오른쪽 상단에 19금이라는 표시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난 그걸 보고 말았다.


오늘 본 피라냐는 식인 물고기가 주인공인 영화다. 그들의 인간을 향한 공격이 시작되면서 영화 새가 연상이 되었고 이미 다 커서 웬만한 공포영화에 꿈쩍도 하지 않는 나지만 스멀 스멀 기어오르는 어린 시절 겪었던 공포심은 여전했던 모양이다.


다행히도 늘씬하고 몸매좋은 비키니 언니(?)들과 영화 중반이후 어설픈 영웅심리에 사로 잡혀버린 우리의 주인공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열연에 금새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아무에게나 보여주어서는 안될 법이다. 얼마전 악마를 보았다에서처럼 육신이 산채로 조각이 나고 얼굴가죽이 통째로 벗겨지는 장면은 나중에 생선을 먹지 못할 어른을 양산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피라냐는 전적으로 볼거리에 매달렸다. 옷감을 최대한 아낀 쭉쭉빵빵 언니 오빠들은 수시로 최소한의 그것마저도 훌러덩 벗어버리기 일쑤고 카메라는 주요한 장면은 풀샷으로 혹은 디테일하게 잡아내고 있다. 그러다 보면 화면이 터질듯하게 배치해놓은 환락의 풀장은(호수라고 했지만 풀장으로 사료되는 좁은 공간) 이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른 민망함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잠시후면 등장하는 공포의 식인 물고기는 이런 민망함을 거둬가고 바로 끔찍한 살육의 현장을 목도하게 만든다. 실제 피라냐의 등장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수중샷을 통해 조만간 사건이 벌어질 것이라는 암시등을 통해 예견된 악몽은 결국 일순간에 벌어졌다가 끝이 나고 만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의 패착은 괜한 영웅주의였다. 제 목숨이 경각에 달렸음에도 타인을 구한다는 허구적인 설정은 공감하기 어렵다. 바로 옆에 사체의 일부가 나뒹구는데 구조에 매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건 지옥이다. 그런 지옥에 빠졌다면 사람은 그곳에 있을 리가 없다.


쓸데 없는 영웅주의 때문에 끝까지 살아남아 주인공 가족을 구해준 전문가(?) 목숨만 앗아간게 아닌가. 이 영화에서 멋진 장면이 하나 나온다. 성인물 여배우 둘이 올누드로 물속에서 듀엣으로 춤을 추는 장면, 그 장면을 삽입할 당위성은 별로 없어 보이지만 에로틱 하다가 위해 매우 아트(?)해보였다는 표현이 맞는다. 사람의 몸이 참 아름답구나 하는...


올해 개봉된 허접한 공포영화와 달리 본격적인 호러물이라는 타이틀은 없지만 나름대로 무거운 볼거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평소 무서운 영화 못보는 분에게도 권해주고 싶다. 물고기에 물어뜨겨 사지가 너덜거리는 것은 모두 특수효과라는 것만 주지한다면 그렇게 무섭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