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엑스페리먼트 - 인생은 어차피 롤플레잉게임 같은 것

효준선생 2010. 8. 6. 02:22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인 엑스페리먼트를 정식개봉전 시사회를 통해 보고왔다. 화제작이었던 만큼 기대가 컸다. 그 기대에 부응했는지는 우선 이 영화의 장르의 모호성부터 깨야싶다. 액션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호러물인가 하니 그것도 아니고 스릴러물에 가깝긴 한데 풀어가는 방식이 무척 낯설다. 물론 10년전에 독일에서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헐리웃버전이긴 한데, 일단 이 영화 좀 딱딱하다. 독일빵집에서 만들어내는 가미가 안된 바게트빵처럼 말이다.


엑스트라급 몇몇을 제외하고 스물네명의 남정네들이 러닝타임을 잠식해간다. 그들은 좀 우스운 이유로 시나브로 적이 되거나 동지가 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펼쳐지는 심리전이 그들이 뿜어내는 사내의 향기처럼이나 긴박하다. 로맨스나 유머는 없다. 점점 강도를 높여가며 밟아대는 자동차 엑셀레이터만큼이나 터지기 직전까지 몰고 간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 내 취향에 멀지 않다. 조금 유연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여성관객들에게는 그다지 호감을 줄만하지는 않아보인다. 왜? 그녀들이 기대하는 로맨스는 껌딱지만큼 나오니 말이다. 그렇다고 실망하지 마라. 주인공 애드리안 브로디가 이 어처구니없는(?)실험에 몸을 담게 된 계기도 자신이 좋아하는 여친을 따라 인도로 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고 영화내내 웃통을 벗고 돌아다니니 눈요기는 충분할 것이다. 대신 그가 상대하는 남정네들은 그를 왜그렇게 괴롭히는지...


영화는 심리테스트라는 허울로부터 시작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모여든 사람들은 14일동안 역할극을 잘 소화해내면 돈 14,000달러(대략 2천만원 가까운 돈이 상당한 액수다) 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지원했다. 그런데 그 역할이라는게 좀 이상하다. 같이 지원했음에도 누구는 간수가 되고 누구는 죄수가 된다.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있나. 그래도 돈앞에 장사없으니 죄수가 된 자들도 묵묵히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별일 아닌 듯 싶은 이런 역할극앞에서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그것은 간수들에게서 시작된다. 권력의 완장을 찬 그들은 가짜 죄수를 마치 진짜 죄수처럼 다루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가벼운 얼차려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가혹한 체벌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그들은 마비가 되어간다. 부리는 자와 부려지는 자로...


인간이 밀폐된 공간에서 한정된 정보만을 받아들이게 되자 생기는 좀 이상한 징후들이 생긴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게 되고 이를 받아주지 않는 간수와 알력은 점점 커지게 된다. 아무도 그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그저 간수복과 죄수복이라는 옷만 입혀놓은 것이다.


사태는 심각해지고 사망자까지 발생하건만 이들의 숨막히는 대결은 빨간불이 들어와서야 끝나게 된다. 그리고 외부와 연결된 고리를 찾아내면서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온다. 누가 언제 무슨일이 있었냐는듯...그리고 그들 손에는 돈이 담긴 봉투가 놓여져 있다.


이 영화는 단순히 흐름만 따라갈 수는 없다. 일단 정해진 룰은 별로 지켜진 것이 없다. 14일이라는 시간도 지키지 못했고 희생자가 생기면 종료한다는 법칙도 깨졌다.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볼 것이라는 카메라도 실상 그것을 들여다 보는 사람이 누군지는 잘 알지 못한다. 영화 첫부분에 등장한 흰가운을 입은 박사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영화적 트릭일 수도 있다. 잘 생각해보면 영화를 보는 내내 관음증에 시달렸다. 마치 내가 감옥안의 그들을 몰래 들여다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게 이 영화의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영화 시작부분 맹수와의 싸움에서 시작해 각종 동물들이 다투는 화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말미에는 사람으로 이어진다. 특히 제복을 입은자의 몽둥이질에 이르면 이 영화의 제작의도를 어렴풋이 읽게 된다.


간수로 나온 포레스트 휘태커의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투영받았다. 완장하나 차면 눈에 보이는 것 없이 룰을 어기는 자의 모습을, 갑자기 한명 떠오른다. 보이지도 않는 권력을 운운해가면 무자비한 폭행을 일삼는 그, 빨간 신호는 여전히 켜지지도 않았다.

우리사회는 과연 안전한 것일까. 가장 무서운 것이 옆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영화 엑스페리먼트는 은유스럽게 혹은 직유스럽게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