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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선라이즈 선셋- 삼라만상은 상대적인 것

효준선생 2010. 5. 11. 00:00

 

 

 

 

 

 

 

삼라만상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말, 가슴에 와 닿는다.

예를 들어 가난하다라는 말은 절대적이지 않다. 가난하다는 것은 단지 있어야 할 것을 가지지 못했다는 말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가지고 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왜냐하면 자기 생각에는 가난하다고 보지만 누군가는 그사람보다 더 가난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상대적 가난이다. 최근에 무상급식으로 말이 많다. 전체적인 논리로만 보면 아주 좋은 정책이다. 그런데 이걸 반대하는 사람의 논리는 부자집 아이들에게까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럴 돈이 있으면 다른 데다 쓰자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무상급식이 이렇게 차별적으로 시행이 되면 잘 사는 애들은 집에서 고급 반찬 담아서 도시락을 챙겨올 것이고 가난한 집 아이들은 나라에서 주는 무상급식으로 한끼를 해결할 것이다. 그럼 한 교실안에서부터 차별은 시작된다. 그걸 어릴적부터 몸으로 받아들인 아이들은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부와 빈의 차별에 대해 반감을 갖지 않을까.

최소한 학교안에서 만큼 가진자와 못가진자와의 차별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엉뚱한 주장을 하는 사람을 보면 이런자 달라이 라마가 사는 곳에 한 일년쯤 보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영화 선라이즈 선셋은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일상과 그의 설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러시아 감독이 메가폰을 들어서 나레이션은 모두 러시아말로 되어 있다.

이 영화에서 달라이 라마는 주장한다. 삼라만상은 상대적이다. 그리고 폭력은 안된다. 마지막으로 인구는 통제되어야 한다.


그의 주장은 다소 현학적인 냄새도 풍긴다. 그말은 지키기 어렵다는 말일 수도 있고 그가 중국과 밀고 당기는 데 있어 의식을 많이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의 주장은 중국이 들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며칠전 한국에서는 북한의 김정일의 방중에 대해 중국과의 외교상에서의 마찰이 빚어졌다. 천안함 사태가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유력한 용의자”인 그를 왜 초대했느냐는 게 주요 골자다. 이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한마디로 콧방귀다. 더 가관인 것은 중국의 반응에 제풀에 놀란 한국 외교라인의 허둥거림이었다. 없던 일로 해달라는 것이다.


반대로 달라이 라마가 외국에라도 나갈라 치면 중국은 그의 행선국에 대해 강력히 항의를 해왔다. 일전에 사르코지가 그를 프랑스에 초대하자 중국은 자국내 들어와 있던 카르푸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던 네티즌들의 행위에 일단 침묵한바도 있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외교는 극단적인 자국이익 우선주의를 토대로 한다. 누굴 봐준다는 말은 통할 수 없다. 그럼에도 어린아이들 칭얼거림처럼 중국에 항의를 한 한국의 외교전략은 한심했다. 도리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따가운 일침에 주눅이 들고 말았으니 앞으로 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할 참인가.


달라이 라마는 인구문제에 유독 관심을 갖는다. 티벳의 인구 문제가 아니다. 중국과 인도의 가난한 중생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반대로 잘사는 사람은 하늘에서 금은 보화가 떨어진 것을 얻어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의 것을 빼앗아 그렇게 될 가능성을 두렵다고 본 것이며 이것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그 어떤 재앙보다도 흉폭한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 이런 말을 한다. 더 많은 사람을 승려나 수녀가 되도록 하면 인구가 줄지 않을까. 또 러시아가 땅이 넓고 인구는 적으니 중국인을 받아들이면 결국 러시아와 중국은 싸우거나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기존의 정치권력의 수장이라는 감투는 필요없어 보였다. 그는 티벳의 대통령이나 주석을 꿈꾸지 않는다. 티벳에서 자치가 가능하다면 중국에 편입되거나 독립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서로를 해하고 죽여야만 자신이 배부르고 잘살게 된다고 믿는 개발 만능주의자들이 권력으 쥐고 있는 한 그의 망명 생활은 금새 끝날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