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시 - 이 찐득한 아나로그적 감성이여

효준선생 2010. 5. 4. 00:42

 

 

 

 

 

 

 

한 소녀의 시체가 강물위에 떠내려오고 있다. 주변은 짙푸른 늦여름의 녹음이 우거져 있다. 그녀는 왜 죽은 것일까 자살이라고 말들은 하지만 혹시 타살은 아닐까 의심도 든다.

그 마을에는 늘 화사한 꽃무늬 블라우스에 소녀풍 모자를 쓰고 다니는 할머니가 있다. 그녀는 중학교 3학년 손자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영화 시는 충격적 장면에서 시작하지만 이내 그 사건을 아웃 포커싱한다. 그리고는 한 할머니의 고고한 취미생활에 인 포커싱한다.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것만 얘기하는 것으로 인식받는 시를 배우는 것이다. 그녀는 문화센터에서 배운대로 사물을 보고 몇자 적어둔다. 그리고 갈수록 그 묘사는 농밀해진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한 할머니는 모여 앉아 떠들기만 하는 남정네들 보다 더 독한 결정을 내린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린 여학생의 자살이라는 심각적 테마를 뒤로 한 채 로맨틱의 정수인 詩作에 연연하는 것일까 하물며 그녀는 그 사건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음에도, 가해자이면서 아닌듯, 그러다가 폭발해버린 그녀의 변심, 영화말미 무심하게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서 읽어낼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 세상은 아름답다고 말들을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가해자의 입장과 피해자의 입장이 카오스에 뒤섞인 듯 교묘하면서도 혼란스럽다. 마치 업보를 다 뒤집어 썼으니 이제 없던 일로 하자는 언질을 준 것 같은 결말을 보여준다. 얼른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 시에서 그 잘못된 운명으로 일찍 세상을 등진 소녀와 소녀같은 감성으로 세상을 살아보려고 했던 할머니는 같은 운명인 셈이다.


소녀 시절 누구나 시인이 되어서 시 한편 써보지 않은 사람이 있었겠는가. 감수성 예민한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상황, 비극이지만 그게 현실이라면 그녀가 유작으로 남긴 시는 그야말로 절묘하다.


할머니역의 윤정희와 중풍에 걸린 회장님으로 나오는 김희라는 2~30년전 최고의 로맨스 배우들이었다. 최소한 내기억에는, 최고의 멜로 배우이고 최고의 성격파 배우였던 그 배우들이 비록 세월의 흐름에 따라 주름진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한국영화는 그들은 오래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긴 러닝타임, 뼈대에 살을 붙이는 시간이 다소 많아 보인다. 그리고 난 그 시간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제는 시나브로 사라질 것만 같은 아나로그적 감성이 프레임을 꽉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또 이런 영화를 다시 보겠나

 

그녀가 남긴 시 한수가 읊조려진다. 비록 죽은 여자아이에게 보낸 내용이지만, 우리에겐 그와 유사한 기억이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