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허트로커 - 전쟁은 그 누구의 목숨도 담보해주지 않는다

효준선생 2010. 4. 24. 01:00

 

 

 

 

 

 

 

 

영화 허트로커는 본격적인 전쟁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이라크 바그다드에는 누군가의 목숨을 노리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폭탄들이 산재해 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폭탄을 제거하려고 한다. 그 희생이라는 게 단 하나뿐인 목숨일지라도 그 누군가는 하려고 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무엇인가 엄청난 폭발장면이 등장할 것처럼 분위기를 유발시킨다. 그 전조는 햄버거가 먹고 싶다는 둥, 잔디밭이야기를 하면서 사업을 하자는 엉뚱한 한담이 이어지면서 드러난다. 결국 폭탄 제거반 팀장은 그렇게 산화하고 만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팀장으로 부임한  제임스 중사, 그는 좀 남다르다. 다들 무서워하는 폭탄속으로 아무렇지도 않은듯 걸어들어가 제손으로 해체를 해야만 속이 풀리는 그런 인간이다. 팀원들은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팀웍은 조금씩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조여오는 분위기 속에서 미칠 수 있다. 그런데 그 틈이 보인다. 살아날 수 도 있다는, 그럼 슬쩍 웃을 수 있다. 그건 즐거움의 웃음이 아니다. 극한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낸 무조건 반사현상이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건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 왜 이 지옥같은 곳에서 목숨을 걸고 폭탄을 제거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팀원은 스스로 포기하고 말지만 제임스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전보다 더욱 강렬한 무엇인가에 홀린 듯 폭탄앞으로 전진할 뿐이다.


영화의 흐름은 부대의 제대일을 거꾸로 계산해 나가며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폭탄 해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적과의 총격장면이 이어지며 시간은 흐른다. 관객들은 그들의 제대일이 되면 홀가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제임스에게 그 시간의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일단 귀국한 그, 아내와 아이가 있는 평범한 가장처럼 보이지만 폭탄해체 전문가가 필요한다는 말을 남기채 다시 현장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자막으로 찍힌 365라는 숫자 그리고 소속 부대명만 바뀌었다.


영화 허트로커는 반전영화처럼 보인다. 그 안에는 폭발물 해체 과정과 팀원간의 미묘한 신경전 두가지 맥락을 지니고 있다. 해체과정은 늘상 긴장감을 유발한다. 물론 성공적으로 해체될 것이라는 예상은 할 수 있지만 그 보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은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이라크 인들의 심상치 않은 눈초리들이다. 그들은 미국인에게도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도 불편한 존재로 부각된다. 폭발물 해체는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폭발물은 미군을 잡기 위한 덫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폐해는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다. 그건 자연재해와는 다르다. 서로가 죽이기 위해 폭발물을 설치하고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그걸 해체한다. 과연 이런 인간의 행위가 발전적인 것일까 지나치게 흔들리는 핸드 헬드 촬영기법 때문에 속이다 울렁거렸다. 뒷자리로 옮겼더니 조금 나아진 듯 하다. 영화 보기 힘들다. 이젠 좀 착한 영화를 보았으면 하는데 이 영화로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이 출렁거렸다니 그래서 보긴 했다.


전쟁은 있어서도 안되고 그 전쟁에서 영웅이 될 생각도 해서는 안될 일이다. 전쟁은 컴퓨터 게임이나 영화속 작위적 안전장치처럼 그 누구의 목숨도 담보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죽어서 영웅이 되면 무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