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공기인형 - 인간처럼과 인간답게의 사이에서

효준선생 2010. 4. 7. 01:24

 

 

 

 

 

 

 

(장면 하나)

한 무더기의 온전치 못한 인형틈 사이에 자신과 닮은 인형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노조미, 그는 그 인형을 만든 사람에게 물어본다. “이 인형들은 어떻게 할건 가요? ”

“한데 모아두었다가 버린다”

“에?”

“어차피 사람들도 죽으면 소각물이 되는 건데...”


(장면 둘)

남자는 떠나버린 노조미 대신 다른 인형을 사들고 와서는 노조미에게 했던 것처럼 사랑을 주고 있다. 그걸 목격한 노조미는 실망한다.

“몸을 좋아한 건가요? 마음을 좋아한 건가요?”

“나는 이런 거 싫어서 인형이랑 하는 건데...”

“나는 대용품이었군요......”


영화 공기인형은 표면적으로는 섹스돌이라고 부르는 성인들의 장난감을 내세운 야리꾸리한 애정물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인간처럼 사는 것과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해 상당히 형이상학적인 앵글을 만들어낸 영화다.


고레에다 감독은 지적하고 있다.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 되지 못한채 마치 일회용 건전지처럼 다쓰고 나면 버려지는 물건들에 인간의 마음을 대비시키고 이것은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많은 오늘날의 불안정한 고용관계와도 관련이 있어보인다.

또한 누군가를 사랑함에도 그로부터의 집착이나 혹은 나중에 헤어질까를 두려워한 나머지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지 못하는 현대인의 애정관도 보여준다.


배우는 메타포적인 연기를 하고 감독은 메가폰을 들고 지시를 하는 화법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후반으로 진행되면서 화자는 분명 인형 노조미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가 비디오가게 알바생의 몸에 상처를 내고 거기에 바람을 불어 넣는 장면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엽기적인 장면이었다. 그 장면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그 알바생은 노조미의 정체를 알고는 나도 너와 같다고 말한다. 무엇이 같다는 말일까? 주류가 되지 못한채 프리타로 살아가는 자신이나 공기를 채우지 못하면 움직일 수 조차 없는 공기인형이나 다름이 없다는 말인듯했는데 노조미는 그걸 세상에 자신과 같은 공기인형이 또 있다는 걸로 받아들인다. 


노조미는 세상사람들을 두고 진짜 인간과 자신처럼 인간과 흡사하게 만들어진 공기인형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줄이 있는 스타킹을 신은 여자에게 지우개를 전해주는 해프닝은 그래서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장소, 가운데 높은 벽이 있고 그 너머에 아주 높은 맨션이 보인다. 그리고 노조미는 벽안쪽에서 황량한 노지, 그리고 허름한 벤치에 앉아있는 장면이 여러번 나온다. 그것 역시 가진자와 그렇지 못한자의 차이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노조미는 좀 불쌍하다. 결국 쓰레기더미에 묻혀 버려지는 신세가 된다. 지나는 사람들은 그녀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비디오 가게에서 알바도 했었고 인간처럼 숨을 쉬었던 적도 있었고 나중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졌던 적도 있었고 거짓말도 했었던 그녀를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한다. 그녀는 인간이 아닌 공기인형이었기 때문이다.


길건너편에 사는 히키코모리(은둔생활자) 여자가 창밖에서 쓰레기 더미속의 노조미를 보고 말한다. “예쁘다” 그녀는 알아본다. 


영화 공기인형은 인간처럼 살지만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은유하기 위해 에로틱한 제재를 사용해 만든 영화다. 배두나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이 돋보였지만 인형에서 그녀에게로의 전환은 영화라는 암묵적 동의가 있지 않고서는 좀 덜컹거리는 느낌이 있다.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서 바람이 빠진다는 충격적(?)인 시퀀스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인간의 탈은 쓰고 살지만 인간답게 살고 있는지는 나도 대답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