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폭풍전야 - 바짝 메마른 고목나무 두그루 같은 사랑

효준선생 2010. 4. 2. 03:29

 

 

 

 

 

 

天刑이라고 부르는 에이즈에 감염된 두 남녀, 그들은 클라이막스와 같은 정사를 나눈다. 그런데 그들은 운다. 자신들의 행위가 성인들의 유희끝에 오는 열락의 터짐으로 나오는 울음이 아닌 자신들의 처지레 대한 슬픈 반향이었다. 그건 세상의 마지막 고행성사와도 같았다. 그들은 에이즈라는 매개를 두고 소통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스러지고 말았다.


영화 폭풍전야에는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시퀀스가 다수 등장한다. 서양, 특히 프랑스 영화의 아방가르드풍의 화면이 여러차례 등장한다. 이 영화속에서 대사는 별로 중요치 않다. 아니 차라리 묵언으로 일관해도 상관없을 정도였다. 롱컷의 이미지가 연속성을 지닌채 진중한 메시지를 보여주었고 배우들은 그저 소품처럼 여겨졌다. 그안에는 배우들의 부정확한 발음이 한 몫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만을 탓할 수도 없어 보였다. 작가가 선택한 대사들은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쓸까 싶은 대사들이 이어졌고 차라리 얼굴만 클로즈 업해도 대충 흐름을 알 수 있었으니 연출이 대본보다 낫다고 해야 하나.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쓸쓸하다. 서해안으로 보이는 어느 외진 바닷가,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는 프랑스어로 된 간판만 달린 카페겸 레스토랑, 찾는 손님도 별로 없다. 주인공 여자는 이곳 사장이자 마술사 보조로 일한 바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연장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여관이 하나있다.


많지 않은 등장인물들은 모두 성관계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 관계는 혈액속의 에이즈 바이러스가 실타래처럼 이어져 있다. 사냥꾼이라고 부르는 남자만 그 관계에서 간신히 비켜서 있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안된다.


누명을 쓰고 수형생활을 하는 남자,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게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중반부터 시작된다. 초반부분은 빠르게 전개되지만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사족스럽다. 그 이유는 엉성한 연기력의 배우들때문이다.


탈옥을 위해 일부러 에이즈 환자의 피를 수혈하는 수인,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지만 죄를 대신 뒤집어 쓴 남자가 감옥에 가있는지도 모르는 미아는 어찌보면 반대편에 있는 듯 싶고 또 어찌보면 하나의 운명 공동체 인듯도 싶다. 자신을 가둔다는 의미의 수인과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아이라는 뜻의 미아는 그렇게 만나고 또 교감을 한다.


그들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에 그렇게 절망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들의 삶과 사랑이 쉽지 않음에 대해 조금 아쉬워 할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심정은 대부분 바람, 바다의 파도, 그리고 펄럭이는 조형물등으로 보여주었다. 게다가 감독은 그들의 행위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11개월뒤라는 자막이 흐르고 주인공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서로에게 다가선다. 어쩌면 그건 서로에 대한 마지막 인사인지도 모른다.


미아가 남남커플에게 총구를 들이밀며 누굴 더 사랑했냐고 묻는 이상한 장면 처럼, 그녀는 상병과 수인 중에 누굴 더 사랑했을까

영화 폭풍전야는 한그루의 바짝 말라버린 나무처럼 비유된다. 가지를 다 쳐내고 잎사귀도 다 떨어진 두 그루의 나무가 이미 성긴대로 성긴 줄기로 서로를 끌어 안아보려고 하지만 시간을 그들을 기다려 주지 못한다. 영화 중간 중간 나오는 마술처럼 그들은 이세상에서 사라지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영화속 남녀의 사랑은 어찌보면 인간의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싶었다. 사랑도 그렇게 메마를 수 있구나. 그저 소통의 부재, 어긋난 인연을 그러안아보지만 너무나 힘든 세대. 영화는 어려워 보였고 보고난 뒤의 마음은 집에 돌아올때까지 응어리가 채 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