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나를 둘러싼 것들 - 타인에서 시작해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

효준선생 2010. 3. 31. 01:07

 

 

 

 

 

 

영화 나를 둘러싼 것은 일본영화의 가장 큰 특징인 생활의 소소한 일상에서 잡아내는 집요한 디테일이 잘 드러나고 있다. 커다란 사건을 가운데 두고 치열한 머리싸움이 펼쳐지는 것을 사양하고 시간의 흐름속에서 부부의 고뇌가 어떻게 치유되는 지 그 과정을 농밀하게 혹은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는 한편의 동양화처럼 보였다.


부부는 아주 작은 집에서 산다. 인테리어도 별다른 게 없다. 남편은 구두수선을 하다가 법정화가라는 독특한 직업을 갖게 되고 아내는 출판사에서 일한다. 부부에게 걱정은 별로 없어 보인다. 투닥투닥 싸우지만 늘 토닥토닥 서로를 위로해 줄줄 안다.

그리고 아기가 생긴다. 아기의 탄생은 그들 부부에게 또하나의 행복을 보장해 줄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아기는 세상에 나와보지도 못한다.


이 영화의 주류는 이때부터다. 1993년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2001년까지 무려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한결같이 조명한다. 부부외에 아내의 친정식구, 방송국직원, 출판사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등장하며 부부를 중심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이 영화의 중심축은 아이를 유산한 뒤 아내의 심리적 갈등묘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또하나의 축은 남편이 마주대할 수 밖에 없는 일본의 사회적 병리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바로 법정안에서 판결장면이 그것들이다. 판결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뒷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기사송고를 위해 달려나가는 기자들, 자신이 엄청난 죄를 지었음에도 전혀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사이코 패스급 범죄자들, 영화속에서는 무고한 시민을 해치는 범인들이 주로 앵글에 잡혔다.

한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아기의 죽음에 몇 년동안 힘들어 하지만 또 누군가는 100명의 유아를 죽이지 못해 한이라고 떠벌이는 범인과 대비해 마치 코마 상태에 빠진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속에서는 그림이 참 많이 나온다. 영화가 90%정도 진행되면 아내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어느 사찰 천장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몰두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리고 완성된 그림을 보기 위해 자리에 나란이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부부, 그리고 아이들 같은 발장난이 참 사랑스러워 보였다.

얼마전 인상적인 모습으로 영화 제로포커스에 나온 기무라 타에가 이번 영화의 여주인공을 맡았다. 영화 끝 부분 그동안 쌓아두었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펑펑 우는 아내에게 당신이 있어야 된다고 토닥거리는 남편의 모습에 다들 가슴이 먹먹하지나 않았을까


세상에 단 한명의 내편이 당신이라는 말, 부부에게 당연히 필요한 말인데도 갈수록 그 말조차 힘들어지는 세상에 살다보니 이렇게 수채화 같은 영화 한편 같이 보면 좋을 것 같다. 제목이 일인칭으로 되어 있지만 실상은 "나"는 부부를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4월 개봉에서 7월로 연기되었다고 하니 기다렸다 꼭 찾아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