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대병소장 - 성룡의 멈출 수 없는 야생 버라이어티쇼

효준선생 2010. 3. 18. 01:46

 

 

▲ 한 남자가 서울극장에 설치된 영화 대병소장 광고프린트를 유심히 보고 있길래 한장... 

 

 

 

 

 

 

 

 

 

2002년 봄 운남성에 다녀왔다. 그 이후 중국에서 가장 볼 만한 곳을 고르라면 난 주저없이 운남을 추천해주곤 했다. 영화 무극과 영화 대병소장의 로케이션이 있던 곳이 바로 운남성 토림이라는 곳이다. 토림은 말그대로 흙 숲이라는 뜻으로 이웃하는 석림과 함께 진기한 모습을 하고 있다. 수 억년전 그곳은 바닷속이었다고 하면 물이 빠지고 돌과 흙이 천혜의 관광자원으로 남은 것이다.


영화 대병소장은 역사에 등장하는 양나라와 위나라의 패잔병을 주인공으로 해서 찍은 영화다. 지리적으로 볼때 춘추 전국시대 두 개의 나라와 운남과는 전혀 무관한 곳으로 아마도 이곳의 황량한 풍광이 성룡의 마음에 든 모양이다.


전국시대는 이른바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강제로 병합하고 약한 자들은 생존을 위해 합종연횡이 수시로 이뤄지는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때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이 발발하고 그 와중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전쟁에 끌려나가야 하는 민초들이었다. 양나라와 위나라가 전쟁을 벌이게 되자 성룡은 전쟁터에 투입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두 나라 군대는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모두 사멸되고 성룡과 위나라의 장군인 왕리홍만 살아 남는다.


적국의 장수와 적국의 병졸이 한데 어울어져 성룡의 고국인 양나라로 향하는 이유는 단 하나 왕리홍이 다리를 다친 상태였고 성룡은 그를 포로로 삼아 자기 나라로 가면 두둑한 포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성룡은 그를 보고 자꾸 포로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양나라 행은 고난의 길이었다. 평탄할 것 같지 않은 이유는 바로 왕리홍의 동생이 왕의 자리를 노리고 정적인 형을 제거하기 위해 여기까지 쫒아왔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또 도와주고 한편으로는 위나라 군대와 현지의 오랑캐들의 추적을 따돌려야 하는 도망자의 길이 된다. 심심할 것 같지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관객들이 지루해 할만 하면 이른바 합의 무술 성룡의 진가는 여전히 유효하다. 어떻게 그런 장면을 생각해내는지 기특하다.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이는 조폭형 무술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상대를 배려하고 또 관객들에게 웃음으로 줄까를 고민하는 성룡의 모습은 경탄할 만 하다.


이 영화는 단순히 쫒고 쫒기는 종래의 액션 무술영화와는 다르다. 시종일관 성룡은 박애주의를 실현하려고 애를 쓴다. 고아를 만나 자기고 있던 빵을 나눠주고 신묘한 여자를 만나서는 장수에게 받은 옥패와 말을 주기도 한다. 길을 가면서 자기고 있던 것들을 하나 둘씩 빼앗기면서도 절대로 서둘르지 않는다. 비단 사람뿐이 아니다. 수시로 등장하는 동물들에게도 그는 박애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까마귀, 토끼, 참새, 잉어등등...그가 잡은 것은 왕리홍에게 먹으라고 준 전갈이 전부였다. 심지어 땅에 조금 올라온 새싹에도 물을 부어주며 그는 노래를 부른다. 성룡은 이제 노장사상에 젖은 듯한 양상을 보이는 것일까. 환갑도 멀지 않은 그에게 그정도의 여유가 생긴 것도 참 멋져 보인다.


원래 장군 역할에는 역시 배우이자 성룡의 친아들인 방조명이 물망에 올랐다고 한다. 물론 그가 해도 좋았을 것 같지만 성룡의 부인이 극구 말렸다고 한다. 왕리홍은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겸 가수지만 대만에서는 최고의 아이돌 출신이었다. 그의 얼굴이 크게 박힌 콜라를 많이도 마신 기억이 난다.


영화의 중반이 지나고 종반으로 가면서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위나라(삼국지에 나오는 그 위나라가 아니다)는 그렇다 쳐도 양나라는 전국 7웅에 들지도 못하는 작은 나라인데 왜 하필 양나라 군사를 주인공으로 썼을까하는...아니나 다를까 성룡이 힘들게 고향에 도착했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패망한 나라와 새로운 주인이 된 진나라 군사들이었다.


수없이 많은 고생끝에 고국이라고 찾아 왔지만 성룡은 이제 갈곳이 없어진 셈이다. 그건 그의 현실과도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중국과 홍콩이라는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준 두 개의 나라(홍콩도 하나의 나라라고 생각한다면)가 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성룡은 어느 한쪽의 손을 번쩍 들어주지 못하는 형편이다. 거기에 대만에 대한 입장도 애매하고...


연예인이지만 좋은 일도 많이 하는 성룡, 앞으로도 더 많은 영화에서 그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연급으로 왕리홍의 뒤를 쫒는 동생역으로 유승준이 나왔다. 워낙 대사가 단답형이라 그의 중국어 실력을 딱 꼬집어 말하기는 뭣하지만 다른 한국의 연예인이 중국영화나 드라마에서 했던 것 보다는 좋아 보인다. 연기는 그냥 중간 정도... 이 친구 보면 많이 아쉽다. 그냥 눈 딱감고 군대 다녀왔으면 지금도 잘나갈텐데 하고...이 영화도 전공영화임에도 이렇게 늦게 보게 된 것도 사실 유승준이라는 부정적 요소때문에 스킵할까도 했었다. 물론 안봤으면 후회했겠지만...


웬만한 헐리웃 영화보다 재미있었지만 아직도 중국영화에 대한 한국 영화팬의 시선은 차갑기만 한 모양이다. 달랑 3명의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나왔으니...하지만 성룡영화의 보너스, 메이킹필름도 다 보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