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데이브레이커스 - 뱀파이어 세상의 약육강식

효준선생 2010. 3. 16. 00:03

 

 

 

 

 

 

 

뱀파이어는 익숙한 영화소재이지만 그들이 나온 영화를 제대로 본 기억은 별로 없다. 그건 뱀파이어들에게 하나 같이 부정적인, 그래서 제거되어야할 대상으로 치부했기에 인간의 눈으로 그들을 호의적으로 그린 영화, 다시 말해 그들만의 세상을 말하는 영화가 드문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뉴문에는 사람 피를 먹지 않는 뱀파이어가 나오긴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해서 인간의 피를 먹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영화 데이브레이커스엔 몇 부류의 뱀파어어가 나온다. 인간이 뱀파이어화 된 이후 그들은 오로지 한 종족만 있는 것 같지 않다. 대다수의 뱀파이어는 인간에서 전이된 부류이지만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인간의 생피가 부족하게 되면 그들은 다른 뱀파이어를 잡아 먹거나 심지어 자신의 몸을 뜯어 먹는 이른바 서브 사이드로 변해간다. 영화속에서 그려진 이들 서브사이드는 뱀파이어가 아니라 마치 좀비처럼 그려지고 그들의 악행은 어쩌면 같은 부류인 뱀파이어에 의해 처결된다.


인간이 원해서 뱀파이어가 되지는 않을을 테지만 누군가는 영속된 삶을 위해 스스로 뱀파이어가 되고 누군가는 뱀파이어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기 하기 위해 일부러 뱀파이어가 된 자도 있다는 설정이다.


이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도 흙탕물을 뒤집어 쓰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흙탕물을 뒤집어 쓴 사람은 멀쩡한 모습의 흙탕물 밖의 사람을 끌어들이려는 본능이 있다. 그게 단순한 흙탕물이 아닌 생존을 위한 목숨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런데 여기 또하나의 부류가 등장한다. 인간에서 뱀파이어로 그리고 다시 인간으로 변한 자의 피는 뱀파이어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설정은 이 영화를 원죄론으로 몰아간다.

많은 공상과학영화들은 문제해결의 방식을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공상적인 방법에서 찾아낸다. 그것은 너무나 우연히 알아내지거나 타당성이 없는, 하지만 그래야만 정해진 시간안에 흐트러진 혼란국면을 수습하려면 어쩔수 없다.


영화속에서 선택한 방법은 햇볕이다. 뱀파이어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은 햇볕인데 영화속에서는 이 햇볕을 역으로 이용해 뱀파이어를 인간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들의 피는 인간이나 뱀파이어가 가진 종래의 것과는 달리 뱀파이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작용을 한다.


영화는 은근히 가진자들을 비꼰다. 에단호크는 혈액 대체제를 만들면 인간을 해치지 않고서도 뱀파이어가 생존할 수 있다는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연구에 몰두하지만 이미 탐욕에 젖은 사장과 뱀파이어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없다. 그들은 부자들은 인간의 생피를 비싼 값에라도 찾을 것이고 대체제는 돈 없는 뱀파이어들을 위한 “싸구려 밥”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대체제의 공급이 늦어지자 가난한 뱀파이어들은 서로를 잡아먹는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서브사이드들은 결국 오늘날 가난한 서민들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서브사이들들이 쇠사슬에 묶여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햇볕으로 끌려나가는 장면, 오늘날 철거현장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닌가. 그들이 떠난 자리엔 수십억짜리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듯이 말이다. 서브사이드들이 죽는 그 현장 근처 그늘에서 공포에 질린듯 그걸 바라보는 뱀파이어들은 자신들도 인간이 아니면서 그렇게 지배와 피지배의 경계선에서 두려워 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영화에는 잔인하고 고어적인 장면도 많이 등장한다. 간혹 작의적이고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가 눈에 띄지만 이 영화, 뱀파이어 영화쪽에서 어느 정도 자리는 잡을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직접 보면서 느껴보시길...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해 본다. 나는 뱀파이어인가 서브사이드인가. 그리고 내 옆에 앉은 사람은 인간인가 뱀파이어인가. 우린 본의 아니게 누가 누굴 잡아먹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영화속 미래는 멀지 않아 보인다. 그게 조만간 닥칠 우리의 미래라면 그건 두려운 경고성 메시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