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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행이론 - 환각이 만들어 낸 작위적 운명론에 말려들다

효준선생 2010. 2. 23. 01:15

 

 

 

▲ 영화 평행이론을 관통하는 세 장의 스틸 사진, 나머지는 모두 사족

 

 

누군가 나와 비슷한 운명으로 살았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아주 공교롭게도 어느 호사가의 입을 통해 그게 평행이론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세상에 등장했을때 사람들은 그 공통적 운명에 경악을 했다.

링컨과 케네디, 이 두사람의 삶과 죽음이 우연의 일치를 보였다는 것, 그게 이 이론의 대표적 예증이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 두사람 모두 자신이 평행이론의 예가 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고 특히 나중에 태어난 케네디는 자신의 운명이 링컨에 비견될 것이라는 것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운명은 정해진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지에 대해서는 점쟁이도 잘 알지 못한다. 대신 나쁜 운명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결정적 운명론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자신의 행위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동원하는 경우도 있을까 하는 시도가 바로 영화 평행이론에 등장했다.


유능한 부장판사 김석현(지진희분)은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인다. 젊은 나이에 동기생보다 앞서 고위직에 오르고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같은 딸을 둔 잘나가는 인생이다. 간혹 자신의 판결에 불만을 품는 복역자들의 협박 전화를 받는 것을 제외하면,


그런 그에게 일간지 기자가 등장해 30년전 전도유망한 판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이 바로 평행이론이었다. 그런데 그 판사에게 닥친 불행이 곧 당신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말에 김석현은 아연한다.


영화 평행이론은 전적으로 이퀄라이즈 공식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누구와 누구, 언제와 언제, 어떻게와 어떻게, 그 답을 쫒아가는 것이 영화를 이해하는 절대적 요소가 된다. 이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이 영화는 복잡하거나, 말도 안된다고 생각할게 틀림없다.


그럼 평행이론의 예증으로 든 링컨의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열거해보자, 한 검사, 그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법무사, 그의 동기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30년뒤 김석현에게도 아들이 아닌 딸이 있다는 사실만 빼고는 얼추 들어 맞는다.  

문제는 위에 열거한 이 사람들이 죽거나 아직 살아서 김석현의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부터 추리는 시작된다. 한명씩 죽는다. 그것도 30년전 지금의 시간에 맞춰서, 김석현의 공포는 극에 달하고, 범인을 쫒는 관객의 호흡도 따라 빨라진다.


그런데 미스터리 스릴러로 한참 잘 달리는 영화는 끝내 너덜너덜 풀어지고 만다. 드라마에서 보는 형사물처럼, 재미있고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김석현이 범인을 잡기 위해 머리를 쓰고 달리고 싸우고 했던 그 모든 사유가 전혀 개연적이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다. 

그건 영화 초반 수많은 복선으로 깔아두었던 알찬 미쟝센과 결말이 별로 관계가 없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김석현은 자신도 모르는 아바타의 존재였나. 누군가가 그를 속이고 자신이 진리라고 믿었던 것에 대한 배신, 그걸 분풀이 하려는 시도와 의지는 알겠지만, 왜 30년 전 한 판사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그냥 놔두지 않는지 알 길이 없다.


만약 영화 전반부 김석현의 입에서 수시로 발설되던 평행이론이 자신의 범죄행각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서 였다면 차라리 사건을 엄폐하며 조용히 입닥치고 있는 것이 더 정상적이 아니었을까.  그가 똑똑한 판사였다니 말이다. 설마 아내를 의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러 개의 반전을 늘어 놓고 골라골라 하는 것도 좋고 이래도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나라고 속이려는 것도 좋다. 그런데 감독 자신도 이 어지러운 형국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채 "이 모든 것은 꿈(?)이요 환각이었습니다." 라는 말을 해버렸으니 참으로 허탈하다 (물론 그런 대사는 없다)


평행이론을 부각시킨 것은 한참을 짝지기 놀이에 열중하던 관객들에게 최고의 킬링타임이었다. 하지만 그 평행이론이 극중 주인공이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못한 순간에 벌어진 어떤 일과 하등 관계가 없는 것이라면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제목만 근사했을 뿐이라는 것. 그것이 남았다. 


운명은 정해진 것이지만 나쁜 운명을 좋게 만드는 것도 제정신에서나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기사 있는 놈들이 더 배신을 잘한다는 말도 있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