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하얀 아오자이 - 한 남자의 숙명속에 회오리 친 어느 가족의 고난사

효준선생 2010. 2. 20. 00:24

 

 

 

 

 

 

 

격변의 세월을 지나며 개인의 자유와 행복은 잠시 저당잡히고 만다. 그게 마치 지옥같은 나날이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이 존재하는 이상, 그안엔 기적같은 희망이 샘솟는다.

20세기 아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영화들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전쟁의 질곡속에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이 어떤 희망을 품고 사는지 보여준 작품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베트남 전쟁,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있으며 그속에 점철된 상처들은 어쩌면 우리의 기억이 상존하는 한 영원한 소재가 되어 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나올 게 없을 것 같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내하고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행복이라는 이야기는 슬픔과 고난을 극복하고서 피어난 작은 꽃잎처럼 피어났다.

바로 영화 하얀 아오자이의 시대적 배경이다.

이 영화속에서 아오자이는 시작과 동시에 출현해 마지막 화면을 장식할 때까지 화두로 장식된다. 하지만 희디흰 아오자이는 누군가에겐 추억의, 누군가에겐 희망의, 또 누군가에겐 절망의 상징이 되었다.

21세기 베트남에서의 아오자이는 그나라 여성을 대표하는 가장 적절한 이미지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건 여성을 속박하는 답답한 의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아오자이는 한 여성에게 첫사랑의 추억과 아이들에게 경제적 혜택을 부여하기도 한 소중한 물건으로 등장한다.

1954년 베트남 북부의 어느 마을, 고아로 어느 군수댁에 들어가 키워진 꾸는 동네 처녀 단을 만나 사랑을 키워간다. 그러나 정세가 흉흉해지고 군수가 봉기군에 의해 사살되자 그는 단과 함께 남부로 떠난다. 그러고 10년 세월, 가난한 살림이지만 아이를 낳고 강에서 잡은 재첩등을 팔아가며 생활을 영위하는 그들 부부, 하지만 첫째 아이가 학교에 올땐 아오자이를 입지 않으면 안된다는 선생의 말에 우울해하자 단은 자신의 모유를 팔아가며 돈을 벌려고 한다.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하는 꾸는 부부의 징표인 빈랑나무에 화풀이해보지만 그렇다고 해결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장녀에게만 제대로 된 이름을 지어주고는 나머지 아이들의 이름은 옥수수, 홍수등 아무렇게나 짓고 마는, 그런 아버지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부모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자매는 한 벌뿐인 아오자이를 나눠 입으며 공부에 매진한다.

1966년 악몽의 한해가 꾸에게 시작되었다. 점장이는 이 해에 꾸에게 엄청난 재앙이 닥칠 것이며 결혼을 해야 액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꾸는 단과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상태였다. 꾸는 부적처럼 그 해 달력을 소중히 여기며 마음속으로 결혼 준비를 한다.


하지만 잠시 행복했던 시절은 전쟁의 소용돌이속에서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첫째딸을 포화속에서 잃고 그리고 자신의 반쪽이라고 믿었던 단마저 폭풍치던 날 강에서 익사사고로 죽고 만다.


아버지 꾸는 남은 딸들을 데리고 피난길에 나서며 하염없이 울고만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권력층의 헤게모니를 위한 전쟁의 피해는 없는 서민들만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배경이 된 1966년에서 시계추를 15년 전으로 돌려보면 바로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 자체를 모르는 요즘 어린이들이야 무감각하겠지만 반공교육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 세대들에게는 베트콩은 북괴, 중공, 소련과 함께 없어야만 할 존재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영화속 포탄은 어쩌면 미국이 쏘아 올린 것일 수도 있다.


영화 하얀 아오자이는 반전영화라기 보다 한 남자의 숙명속에서 그들 가족이 보여주는 가족애, 그리고 그 가혹한 운명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베트남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생활력 강한 단보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곱추 꾸, 그라고 그러고 싶겠냐만은 영화 말미에 보여진 그 굽은 등에 짊어진 재첩 단지와 막대기가 왜그렇게 무거워 보이는지, 안쓰러운 모습이 요즘 경제전쟁판에 내몰린 기력을 잃은 한국 아버지들의 모습과 하등 다르지 않았다.


아오자이 때문에 사랑했고 아오자이 때문에 엄마가 수모를 겪었고 아오자이 때문에 죽었을 지도 모르는 가족의 이야기, 베트남의 근현대사의 소용돌이속에서도 그들과 아오자이는 살아 남았다. 마치 엄마가 남긴 흰 아오자이에 물든 쪽빛 잉크처럼 얼룩진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