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 - 우리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었다.

효준선생 2010. 2. 19. 01:21

 

 

 

 

 

어느 사회든지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2010년 한국에서 벌어지는 대표적인 갈등이라면 빈자와 부자의 갈등, 세종시 건설을 둘러싼 원안 고수파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겠다.

제각각 목소리를 높이지만 중재자가 없거나 결정권자가 아주 어리석은 경우 언젠가는 봉합은 되겠지만 그만큼의 막대한 사회적 비용은 지출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갈등이 없는 사회가 반드시 좋은 사회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것도 조금만 지나쳐도 독재, 혹은 전체주의로 나갈 수 있는 독소적 요소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명한 선지자라면 갈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자여야 하고 봉건시대에는 이를 성군, 현군이라고 했고 요즘 세상에서는 “똘똘한”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바로 지금의 사회를 들여다 보면 지금의 대통령이 똘똘한지 아니면 그렇지 못한 지 쉽게 알 수 있다. 성과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회적 통합 프로세스가 얼마나 안정적인지, 다시 말해 얼마나 많은 사회 구성원이 그것에 수긍하고 정신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해 주는 일은 바로 우리 국민의 몫으로 남겨져야 한다.


영화 인빅터스는 정치와 스포츠의 절묘한 만남을 통해 사회갈등을 봉합하려는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과 럭비팀의 절묘한 융합이 만들어낸 수작이다. 그런데 조금 더 뜯어 보면 조금 탐탁치 못한 부분이 보인다. 그건 뭘까. 왜 머나먼 지구 반대편의 나라 한국에서 이 영화를 보는데 자꾸 기시감이 드는 것일까 하는 의심때문이었다.


1980년 전두환은 쿠데타를 통해 다시 군사정권을 만들어냈다. 이미 수십년을 군사정권의 압제적 분위기에서 살다가 이제 숨을 쉬나 싶었던 국민에게는 다시 한번 좌절을 느끼게 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전두환은 이런 민심을 무마하기 위해 들고 나온 것이 바로 프로 스포츠의 확실한 밀어줌이었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씨름등이 하루종일 공중파를 장식했으며 국민들은 마치 몰핀에라도 맞은 듯, 열렬한 관중으로 만족했다. 그런 모습을 뒤에서 보며 웃고 있던 집권세력의 너무나 정치적인 계산을 생각지도 못한채. 


시간이 흘러 2002년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기적이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났다. 바로 월드컵 축구에서의 한국 대표팀의 선전이었다. 4강 진출은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으며 우린 모두 거리로 나서 외국 토픽에서나 보던 그런 열광적인 응원모습을 재현해 냈다. 그리고 우린 모두 그것을 일체화된 한국인의 저력이라고 합창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만델라는 남아공뿐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민주투사로 알려져 있다. 수십년을 반대파에 의해 옥살이를 하면서도 절대로 굴복하지 않았으며(이게 영화 제목인 인비턱스의 원뜻) 결국 남아공 수반의 자리까지 올랐다. 대통령이 된 만델라의 눈에 비친 남아공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흑인과 백인의 갈등이었다. 본인이 백인세력에 의해 정치적 탄압을 받아 만신창이가 된 바 있으면서도 그는 백인을 아우르지 않고서는 남아공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음을 잘알고 있었다. 게다가 대통령이 된 자신을 비하하는데 서슴지 않는 백인들, 그들은 여전히 남아공의 주류세력이었으며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만델라는 서두르지 않았다. 무력이 아닌 스포츠를 통해 우선 흑인의 백인에 대한 적개심을 누그러뜨리는데 주력했다.


영화의 첫장면, 백인들은 잘 만들어진 잔디밭에서 럭비를 하고 있지만 길건너 흙바닥에서는 흑인 아이들이 공하나로 동네축구를 하고 있다. 그 사이를 지나가는 대통령의 차량행렬, 당시 남아공의 럭비팀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흑인을 차별하는 전형으로 각인된, 흑인 입장에서는 못된 단체였다. 만델라는 이 팀의 주장을 불러 넌지시 모종의 협상을 제안한다.

느리지만 조금씩 흑인사회로 손을 내미는 럭비팀, 그뒤에는 만델라 대통령이 있지만 절대 그는 전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어느새 온 국민의 팀이 된 럭비팀, 그들은 이제 실력으로 세상에 자신을 내세워야 한다. 바로 1995년 남아공에서 열린 럭비 월드컵이 그 무대가 되었다. 강팀을 차례로 꺾고 결승에서 만난 남아공과 뉴질랜드. 과연 남아공은 모든 국민들의 바람대로 우승을 차지 할 수 있을까.


영화는 럭비라는 영국을 상징하는 종목을 택했고 남아공이 꺾은 팀들은 대다수가 영연방의 백인 팀이었다. 그런데 뉴질랜드 팀은 좀 남달랐다. 그팀의 주력은 백인이 아니라 마오리족이었다. 마오리족 역시 원주민이면서도 백인에게 밀려난 마이너리티였다. 당연히 그들에게도 애환이 있어 보인다. 이 점이 바로 이 영화가 원사이드하게 밀어붙이는 남아공 만세의 영화가 아니라 어느 사회의 소수가 주류가 될 수도 있고 사회구성원으로 하여금 인정받는 세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비서실장은 만델라에게 두어번 묻는다. 럭비팀을 지원하는 것이 정치적 계산이 아니냐고. 그러자 만델라는 말한다. 정치적이라기 보다 인간적 계산이라고... 권력이나 무력으로 과거 백인의 기득권을 빼앗는 것은 쉬워 보였다. 워낙 인구수에서 압도적이기 때문에 밀어붙이면 되기 때문이다. 이점은 남아공의 백인들에게도 위협적인 문제였다. 이것은 럭비팀 주장의 아버지도 언급했고 대통령 경호실의 경호원들 사이에서도 살짝 보여주었다. 하지만 만델라는 결코 일방을 내치지 않고 포용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자신을 사회와 격리하기 위해 그렇게 장시간 독방에 가둔 백인 정치권과 하등 다르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무려 두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영화였지만 보는 내내 가슴 한켠이 뭉클거렸다. 머나먼 나라 남아공이지만, 그리고 검은 피부의 대통령이지만 거기에 한국과, 지금은 세상에 없는 대통령을 대입해 보면 나의 기시감은 무리가 아니었다. 배제의 정치가 횡행하는 지금, 극단의 대립으로 갈등을 조장하고 그것이 정권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소인배와 모리배들이 결탁하고 있는 지금, 검은 대륙의 남아공에서는 10여년전 이미 실험을 해본 것이 아니던가.


올 여름 남아공은 다시 한번 주목을 받을 것이다. 전세계인을 한데 뭉치게 하는 월드컵을 통해... 모든 국가의 선전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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