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서평]책 읽고 주절주절

책 가난한 이의 살림집 - 묵직한 세월이 오롯이 담긴 책

효준선생 2010. 2. 14. 00:40

 

 

 

개인마다 의식주에 대한 비중은 조금씩 다르다. 입고 먹고 사는 것 중에서 그 중요성은 어쩌면 앞쪽부터 비중을 두지 않았을까 싶지만 사회의 발전과 경제적 윤택함으로 더 이상 벌거벗고 살거나 굶주린채 허덕거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의와 식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된 반면 사는 거처를 마련하는데는 아직 많은 한국인들에게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겨져 있다.

거진 반평생을 직장을 다니며, 혹은 불로소득으로 든가 모은 돈을 아낌없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한칸 마련하는데 쏟아 붓고 나서야 자신의 인생의 큰 짐을 벗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런데 혹자는 하고픈 일, 먹고 싶은 것도 줄여가면서 모은 돈으로 그 가치가 불분명한 시멘트 덩어리에 모두 털어넣는 삶은 행복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집을 마련하려고 20여년을 기다렸다가 정작 그 집에서 채 2년도 살지 못하고 비운에 죽은 인물로는 명나라 3대 황제 영락제 주체를 꼽을 수 있다. 아버지인 주원장이 만들어 놓은 남경땅과 궁성이 싫어서 북경으로 올라와 원나라때 만들었다가 훼손된 북경성위에 자신이 원하는 궁성을 만들었다. 당시 중국 땅덩어리에서 나오는 최상급 건축 자재는 모두 동원했다. 무려 20년이라는 시간동안 지금의 자금성은 완공되었다.

그동안 건축주 주체는 여전히 남경성안에서 편치 못한 생활을 해야 했다. 명나라 초기 불안정한 사회분위기와 자신이 축출한 조카 주윤문의 패거리가 언제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일종의 강박증에 시달렸다. 또 한편 외적의 침입에도 수시로 나가 맞서 싸워야 했으니 주체로서는 하루빨리 새 도성이 완공되기 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북경은 기후조건이나 용수의 문제등등 그다지 좋은 입지조건을 가지지 못했음에도 주체 자신이 왕년에 연왕(북경을 통치했던 봉국의 수장)으로 북경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그곳이 편했던 것이다.

드디어 자금성의 위용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위무도 당당히 자금성으로 들어선 명나라 황제, 드디어 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으리라. 하지만 인명은 재천이라고 자금성안에 있던 9999개의 방을 다 둘러보지도 못하고 주체는 사망했다. 그 후손들은 번듯한 황궁에서 황제 노릇을 할 수 있었지만 본인은 제대로 새집에서의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 셈이다.


현대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사는 곳이라는 생각보다 남들보다 호조건(싸다)으로 집을 사두었다가 나중에 집값이 오르면 되팔아야 겠다가는 생각에 은행이자를 끌어다 집값으로 치루고 수년을 살아야 한다. 다행이 집값이 오르면 다행이지만 절반은 그렇지도 못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대출금을 갚는 동안 시달려야하는 원금과 이자 상환에 그 삶은 최소한 절반쯤 피폐해지지 않을까


여기까지는 그래도 있는 집 사람들의 배부른 고충이다. 아무리 일을 해도 집을 사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은 호사스런 일이다. 집장만을 희망하지도 않고 단지 지금 사는 허름한 집에서 내쫒기지만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일부 집주인과 뉴타운이라는 허명으로 싹쓸어버리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은 구차하고 없어도 되는 그런 삶으로 투영되어 왔다. 사람에게 안전감은 본능이다. 한끼만 굶어도 불편해 하는 사람에게 오늘 밤 돌아가 쉴곳이 없다는 사실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가 안되는 불안전감을 준다.


자신의 가족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도 힘겹다. 농촌에는 도시로 떠난 아이들을 무슨 때나 되어야 돌아오는 연어들을 기다리는 심정의 노인들만 남아있다.

그들에게는 호화스런 집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런데 서울로 와서 평수로 따지는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보다 오래되어 낡고 허름하지만 그곳이 더 건강에 더 좋고 인간적이라는 점에서 우리 할배, 할매의 집은 우리 모두의 고향이나 진배없다.


다큐멘타리 사진작가 노익상이 쓰고 사진을 찍은 책 가난한 이의 살림집은 바로 이런 집이라는 피사체에 인간이 사는 곳이라는 주제를 상감하고 거기에 카메라 렌즈와 대화를 집어 넣은 책이다.


70~80년대 압축경제만이 부국강병으로 가는 지름길이며 그 속내가 정권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만들어 놓은 이름도 거창한 문화 주택들, 그리고 그안에도 끼지 못한 더 오래전 만들어진 차부집, 막살이집등등.


요즘 아이들이야 아파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하다보니 왜 단독주택이 필요한지 모르고 단독주택 몇 개만 헐면 수십채의 가구가 살 수 있는 아파트가 만들 수 있다는 셈법에 너무 익숙해져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된 점은 그 아파트라는 게 그저 더 많은 사람을 비인간적으로 만들고, 감옥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 책은 시골에서만 살던 사람이 강남의 40평대 아파트는 그 가격이 십수억원에 이른다는 말도 안되는 놀라운 사실보다 이곳은 사람살 곳이 아니다 라는 말 한마디에 더 주목한다.  


작가는 지난 십수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냥 건축물로서의 집이 아니라 그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신산한 일상을 다루고 있다. 내가 어렸을 적 이야기가 묻어 있고 나 역시 집은 사고팔며 돈벌이의 수단이 아닌 누군가가 그안에 살면서 즐거워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때 그 시멘트 덩어리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서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서울을 무슨 레고 조각만큼으로 여겨 철거후 신축만이 살길이라고 우기던 전현직 서울시장 때문에 서울 토박이의 어린 시절 골목 추억은 사라져 버리고 있다. 외국인에게 서울의 이곳을 가보라고 할 곳이 없다. 번듯한 건물에 호수로 매겨진 상점의 번호들, 세상 어디든지 산재한 그런곳을 보려고 서울까지 올 외국인은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런 모습이 서울의 멋진 모습이라고 일갈한다. 웃기는 소리다.


사람이 제대로 살지 못할 동네 서울은 강원도 어느 움막집만큼도 못할 정도로 하찮다. 그건 눈에 보이는 번듯함과 상관없다. 오롯이 녹아 있는 골목에 대한 추억, 허름하지만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취. 이런게 없어지고 있다.


책은 두껍고 무겁다. 대신 사진이 많고 그 사진아래 적시해놓은 설명이 정답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내 어린 시절의 영감을 작가가 대신 적어 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오래 소장할 가치가 있다.

작가처럼 마치 지도에도 없는 곳을 행군하듯 취재할 자신은 없지만 오늘도 설날이라고 고향으로 돌아올지 모를 아이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독가촌의 어르신의 기대와 한숨을 느껴보고 싶다. 그럴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