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울프맨 - 보름달이 뜨면 폭발하는 그 남자들의 야수성

효준선생 2010. 2. 8. 02:26

 

 

 

 

 

 

 

 

 

한국에서 어린아이가 울며 떼를 쓰면 어른들이 뚝 그치지 않으면 호랑이가 와서 잡아간다며 아이들을 어르거나 겁을 주곤 했다. 호랑이를 본적도 없지만 왜 다들 호랑이의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다가 동물원에 가서 실제 호랑이의 위용을 보는 날엔 그날밤 꿈에 진짜 호랑이가 나타타 자신을 잡아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


100여년전 영국, 그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의 상징은 늑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혹은 늑대 형상을 한 미치광이가 출몰해 사람들을 해쳤다는 소문이 횡행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찰들 까지 나서 늑대, 혹은 미친 늑대병에 걸린 사람을 색출하는데 혈안이 되었다.


영화 울프맨은 바로 그 할머니들이 아이들에게 구전으로 들려준 무서운 동화를 바탕으로 해서 찍었다. 서양 동화를 좋아하지 않아서 전혀 모르는 이야기지만 대충 어떤 이유로 늑대의 형상이 된 사람의 이야기라고 추측하고 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자연속의 늑대가 사람을 해치는 거라면 그건 영화가 아닌 다큐멘타리이기 때문에 그럴리 없다고 판단했다.


영화는 처음부터 좀 잔인하게 시작한다. 인정사정없이 사지 절단이 등장하고 선혈이 낭자하다. 그리고 그 정체를 어둠속에 감춘채 진행한다. 저것은 실제 늑대일까 아니면 늑대 형상의 미치광이일까?


로렌스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의 동생은 영화 시작과 함께 끔찍하게 죽었고 형인 그가 범인의 정체를 찾아서 오랜만에 집을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성채에는 덩그러니 그의 아버지만 남아 있다. 스산하다. 뭔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바람과 낙엽처럼 휘감아 돈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이며 로렌스에게 닥칠 운명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영화의 한가운데를 꿰뚫고 있는 것은 이종 감염이다. 그것은 개인의 외상후 스트레스에 의한 환영이라는 종래 영화에서 자주 다루었던 컨셉과 일대일로 맞서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이종 감염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한채 숙명을 받아들이는 반면, 당시 종교계와 경찰들은 신의 의지나 들먹거리고 혹은 잔인한 고문을 통해 환자의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치료했다고 설레발을 친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며 오만이기도 했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현실과 병리적 괴리안에서 영화는 혼돈을 자초한다. 키를 쥐고는 인물이 스스로의 정체를 밝히며 언급한 부분은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의 경외였다. 그 당시 영국인들에게 인도는 식민지로서 뿐 아니라 동양문화에 대한 일종의 두려운 판타지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늑대병은 인도 힌두쿠시에서 얻은 것이며 그것으로 결국 파국을 맞이해야 했다는, 또는 몽골족을 위시한 북방 아시아 민족의 설화도 많이 스며든 것처럼 보인다. 동생의 여자친구를 사랑하게 된 것이라든가 여우나 사자가 아니라 늑대라는 것이 그들의 호전성과 맞물린 그들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가둘 수 없이 광란을 하고 남을 해해야 하는 운명, 헐크의 선배쯤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약물이 아닌 애니멀리즘과의 접합, 그게 이 이야기가 현실과 무서운 동화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진정성을 묻는 게 아닐까 싶었다. 우리의 본 모습은 보드라운 인간의 피부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 늑대의 심성을 가지고 남을 해하는 경우도 무수하기 때문이다.


늑대는 산속에 있지 않다. 자신보다 못사는 사람을 해하면서도 스스로는 전혀 깨닫지 못하는 미치광이 늑대병 환자들은 그후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도 도처에 산재했다.


영화의 몰입도는 최고였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은 맥박수를 높이는 배경음악과 베네치오 델 토로, 안소니 홉킨스의 진정성있는 눈빛과 연기, 그리고 조금은 과하지만 감내할 수 있는 늑대의 공격장면에서 말미암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