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공주와 개구리 - 무릇 공주들은 왜 맨날 왕자를 기다리기만 하는 걸까

효준선생 2010. 2. 5. 00:22

 

 

 

 

 

 

 

디즈니의 만화영화는 어린 시절 내 일요일을 일깨워 주던 자명종이었다. 시작하는 시간이 상당히 일러서 그걸 보기 위해서는 졸린 눈을 부비며 일어났고 만약 그날 혹시라도 그걸 놓치면 무척이나 애석해 하고 다음주엔 반드시 보리라고 마음먹었던 게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만화영화가 어린애들에게는 최고의 오락거리였다. 저녁에는 주로 일본에서 들여온 로봇 관련 만화가 판을 치던 시절에(그것이 일본제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선명한 실루엣을 자랑하던 디즈니의 만화는 그야말로 환상의 세계였다.


그런데 그 디즈니만화라는 게 꿈과 상상력은 키워주되 서양문화의 일방적인 주입과 경도라는 부작용은 계산에 넣지 못한채 수용되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의 여자아이들은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의 수동적인 신세가 왜 그렇게 부러웠는지, 남자아이들은 흰 승마바지를 입고 노란 머리를 한 왕자가 되지 못함에 자괴감을 가져야 했는지, 솔직히 세상에 그렇게 많은 왕자와 공주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처럼 남겨졌다. 공부를 잘해야 왕자와 공주를 만난다는 어른들의 계산된 교육이 머리위에 날아들었고, 나중에는 스스로가 공부도 잘하고 좋은 직장을 잡아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쪽으로 바꾸기도 했다.


요즘엔 백마 탄 왕자가 아니라 흰색 벤츠를 탄 졸부가 왕자가 된 시대에 살기도 하지만 여전히 공주는 왕자를 기다리는 신세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영화 공주와 개구리는 포스터에서 보다시피 유색인종이 공주로 등장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만화영화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공주란 피부색과 관계없이 왕자가 도움을 주어야만 자신의 미래를,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고전 문법을 답습하고 말았다.


이 영화는 여러 이야기를 섞어 놓았다. 개구리에 입맞춤을 하자 개구리가 왕자가 되었다는 줄기에, 하인이 왕자 행세를 하고 왕자는 개구리가 되었다는 것은 왕자와 거지에서, 가난한 여자아이가 나중에 왕자를 만나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는 것은 신데렐라에서, 부두교로 상징되는 악한을 물리친다는 것도 수많은 만화와 서양의 동화에서 차용된 줄거리들이다.

거기에 주인공을 돕는 벌레와 덩치큰 동물들도 어디선가 본듯한 설정들이다. 물론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그보다 편한 것은 없겠지만 공주의 피부색에 덧칠만 했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디즈니가 줄곧 추구해온 기존의 가치관에서 진보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장면속에서 수없이 보여지는 공주의 레스토랑, 그것도 왕자를 만나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었다니, 그런데 아이러니컬 한 것은 그 왕자(왕자도 순수혈통의 백인은 아니다)도 가난해서 옆집 공주(이 여자가 진짜 돈 많은 백인 공주)의 도움을 받았다는 설정, 아이들의 만화영화지만 결국은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화영화 하나 보면서 뭘 따지냐고 하겠지만 영화가 뒤로 가면서 디즈니의 철학을 논하자 정작 아동관객들이 지루해 하는 것을 보니, 여전히 그들(디즈니)만의 만화라는 걸 인식하게 되었더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