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8인 최후의 결사단 - 혁명의 뒤안길로 사라진 민초들(강추)

효준선생 2010. 1. 15. 00:50

 

 

 

 

 

 

 

 

"혁명은 백성의 피로 만들어진다. 나는 당신들께 빚을 진 셈입니다." 라는 말을 뒤로 한 채 손문선생은 제 나라 땅을 마음 편히 밟지도 못하고 다시 머나먼 망명의 길로 들어섰다.

1906년 홍콩의 정세는 매우 복잡했다. 홍콩은 이미 영국에게 할양되어 식민지가 되었지만 그 안에서 살고 있던 중국의 백성들은 자신이 영국이라는 서양 오랑캐의 개가 되는지 차라리 중국의 노예로 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조국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만주족 치하의 청은 날이 갈수록 부패와 무능으로 풍전등화와 같은 신세에 있었다.

한족을 위시한 이들은 새로운 조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황제가 아닌 민주주의 공화국의 설립을 기대하고 있었으며 그 핵심인물이 바로 중국 근대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손문이었다.


하지만 그해 청 정부는 자신들의 집권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손문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고 여기에 맞서 그를 지키려는 일단의 무리가 만들어졌으니 이것이 바로 영화 8인, 최후의 결사단의 주요한 얼개가 된다.


title


영화 8인, 최후의 결사단이라는 한국어는 고육책이 아닐까 싶었다. 중국쪽에서의 제목 십월위성을 그대로 써봐야 무슨 의미인지 딱히 다가 오지 않고 영어제목인 보디가드앤 어쌔신은 두개의 영화를 한데 합친 것 같아 어색하다.

그러면 수많은 배우들이 운집한 이 영화에 8인이라면 누굴 말하는 것일까? 그안에 손문이 포함된 것일까? 아니면 그를 지키려는 멤버 수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객과 보디가드를 합친 숫자일까?

중국 제목 십월위성에서 십월은 신해혁명이 일어난 그 달을 말하는 것이고 위성은 포위하다. 보위하다 둘러싸다라는 의미가 있다.


actor& character


이 영화가 오프닝이 시작하면서 정말 가슴이 벅차올랐다. 좋아하는 배우들이 종합선물세트로 등장한다는 사실때문이었다. 배우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이름들이 보여졌다.

우선 손문을 보위하는 8인의 캐릭터와 그 배우들을 살펴보면


우선 양가휘, 토니륭으로 더 잘알려진 그는 한동안 스크린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가 제작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계획을 짜는 인물로 등장한다. 영화 안팎으로, 선이 굵은 연기파 배우였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피를 두려워하는 조금은 나약한 혁명가로 나온다. 광동어투에 익숙한 그가 힘들게 북경어로 대사를 치는 것을 보니 그것도 재미...


왕학기, 원래 아버지 역할은 일찍 죽고 나머지 사람들이 복수를 하는 상황이 많았지만 이 역할은 그런 관례를 깨버리고 끝까지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독립군 자금을 대주던 부자로, 자신의 아들이 희생되는 아픈 결과를 감내해야 한다.


이 둘은 사실, 필더는 아니고 수뇌부라고 봐야 적당할 듯 싶다. 축구로 보자면 감독과 수석코치정도. 그렇다면 최고의 필더는 누구일까 여러명이 있지만 난 인력거꾼으로 나온 사정봉을 꼽고 싶다. 그 자신이 배우지 못하고 싸움을 하며 입은 상처가 얼굴에 남았지만 주인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는 마음,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기꺼이 반려자로 받아들이는 착한 마음씨, 사정봉은 극중에서 내내 볼품없고 얻어맞는 장면으로 나오지만 그가 보여준 연기와 상황이 이 영화가 단순히 폭력미학적 느와르가 아님을 말해주어서 뭉클했다.

이런 장면이 나온다. 사진관 딸을 마음에 들어해 주인에게 다리를 놓아달라고 청을 올린다. 사람이 워낙 성실하니 딸을 자기 집에 들여달라고 말을 끝내고 보니 그 아가씨는 하반신 불구였다. 그럼에도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사정봉의 표정은 정말 압권이었다. 그때 왜 사정봉의 실제 부인인 장백지의 얼굴이 떠오르는지...  

그리고 마지막 장면 청 정부를 대변하는 암살자의 두목의 바짓 가랑이를 붙잡으며 도련님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다 한없이 얻어맞는 장면도...


두 번째로는 바토르를 꼽고 싶다. 바토르에 대해서는 대부분 모를 테지만 중국에 있을때 농국선수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그를 기억한 나는 처음에 어디서 보았는데 하고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바로 키가 비정상적으로 큰 거인역할이 바로 그였다. 의리와 정의감에 불타오르면서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던 그, 오랜만에 덩크슛 포즈로 야자열매를 가지고 2층의 저격수를 공격하던 모습에서 아마 중국관중들이 환호성을 터트리지나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그는 소수민족(몽골족) 출신이다. 기억으로는 거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세 번째로는 역시 최강 액션달인 견자단이다. 이번 영화초반에서는 정의의 사도가 아닌 모양이다 싶었는데 역시 피는 돈보다 강함을 여실히 보여준 그의 발로 뛰는 런어웨이는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연기.


네 번째로는 이우춘, 솔직히 이 배우, 아니 이 가수가 여기에 나올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경극 공연단장의 딸로 나온 그녀는 한국의 슈퍼스타 k처럼 방송 공개오디션(超級女聲)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인물이다. 중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노래도 꽤 잘한다.

그런데 스크린으로 보니 피부가 참 곱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당시 인물같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다소 아쉽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꺼먹칠을 하고 있는데 그녀만 늘 분칠을 하고 있고...얼굴 형 자체가 홍콩에 있을 만한 그런 형이 아니다. 전형적인 북방형 얼굴...


다섯 번째로 왕백걸, 솔직히 잘모르는 배우다. 부잣집 외동아들로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복많은 인물이지만 스스로가 혁명만이 중국이 살길이라고 외친다. 손문을 대신하여 고난의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명...가장 아쉬운 캐릭터, 여명의 이름이 말단에 자리한 것으로 보아 큰 배역은 아니겠다라고 생각은 했지만 거지, 아버지의 여자를 사랑했다가 모두 죽음으로 몰고 스스로가 자괴감에 빠져 사는 인물, 최후의 방어선을 그가 만들지만...그의 무술실력으로도 중과부적이었다. 지진희가 이 영화에 캐스팅 될 뻔했다고 하는데 혹시 이 역할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이들 외에 악역들과 작은 배역으로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연기를 해준, 호군(암살 수괴), 사진관 딸역의 뜨는 배우 저우윈, 그리고 그들이 있어 80, 90년대 홍콩영화가 존재할 수 있었던 증지위와 임달화등도 정말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끝으로 중국 본토 출신 배우중에서 가장 엣지있게 생긴 판빙빙...아무것도 아닌 역할로 알았지만..그녀에게도 아픔이 있었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줄거리와 분석


손문은 반체제 혁명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홍콩으로 들어온다는 첩보를 입수하게 된 청 정부쪽 사람들은 자객을 밀파한다.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진보성향의 중국일보등을 경영하던 왕학기는 양가휘와 함께 사람들을 모아 결사단을 조직한다. 여기에 들어온 사람들이 바로 사정봉, 여명, 바토르, 이우춘, 견자단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들이 할 일은 손문 선생이 회담을 하는 1시간 동안 자객들을 따돌리는 역할이다. 그것도 인력거만으로...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자객들과 맞서 싸우는 그들...히어로의 모습이 아닌 민초들이었지만 그들은 혁명이라는 대의를 위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주인과 도련님의 안위를 위해, 딸에게 멋진 아버지로 살다 갔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들은 초개처럼 한 몸을 바치려고 한다.


이 영화는 그동안 중국영화에서 내보인 수만가지 영화적 요소를 고루 담아내려고 애쓴 모습이 역력하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새로울 것도 없는 싸움씬도 한국영화에서는 아직도 볼 수 없는 고난도의 그것이며, 씨지와 세트를 통해 만들어 놓은 1900년 초반의 홍콩의 거리모습, 거기에 인간은 어떤 가치를 위해 살아가야 하나라는 답을 곳곳에 심어 놓은 동양적 철학관, 멜로물에 버금하는 애틋한 러브라인등등...

 

또한 손문의 등장을 알리는 타임마크를 삽입해서 긴장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것, 그리고 정해진 한 시간을 지켜내기 위해 시간과의 사투를 벌인 것들은 헐리웃 액션영화의 그것과 흡사했다. 무려 140분이라면 중국영화 치고는 엄청난 러닝타임을 몰입상태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 요소 덕분이 아닐까 싶다.


홍콩영화를 포함한 중국영화를 보는 시선은 매우 차갑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나야 중국어로 들어가면서 줄거리를 파악하는 편이 좀더 수월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액션보랴 자막보랴 힘이 들 수도 있다. 이 영화가 헐리웃의 초대형 블록버스터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량이 투입된 것 같고 거기에 반가운 배우들이 우르르 나온 다는 것, 진일보한 편집과 개연성등등...오랜만에 완성도 높은 중국 영화를 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엔딩에도 나오지만 1906년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고 5년뒤 신해혁명이 일어나 수천년을 이어온 중국에서의 황제 중심의 전제주의는 끝이 났다. 과연 8인, 아니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그들의 희생은 가치가 있었던 것일까.

백성들의 힘은 배를 띄울 수도 그 배를 가라앉힐 수도 있음을 어느 시대 위정자라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1월 14일 단성사에서 편의를 제공해주신 영화사 관계자 분께 감사의 인사를 리뷰로 대신해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