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시네도키 뉴욕 - 인생은 무대에 올리지 못한 한편의 미완성 연극

효준선생 2010. 1. 6. 00:57

 

 

 

 

 

 

 

누구나 자신은 자기의 인생에 있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인공의 자리에서 물러나 조연, 아니 엑스트라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문득 두려워 지는 순간이 옵니다.

내 인생을 그린 작품에서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가장 먼저 신호를 보내는 것은 몸뚱아리입니다. 언제나 이팔청춘일 것 같은 신체의 나이가 한켜 한켜 쌓아 올라감에 따라 몸은 이상신호를 보내고 나도 이제 서서히 늙어 죽음을 맞이할 때가 오다부다라고 느끼게 되죠.


용기를 내어, 혹시 천재일우의 도움을 받아 이제 인생 후반기를 보낼 준비를 하려는 사람이라면 영화 시네도키 뉴욕에서의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맡은 케이든을 잘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미술을 하는 아내와 귀여운 네 살짜리 딸을 둔 그는 겉으로는 별로 불행해 보일 여지가 없습니다. 그저 각자의 일에 너무 몰두해 상대방에게 관심을 덜 갖는 정도로 보입니다. 그런데 공연 연출가 케이든은 다음 작품으로 무엇을 올리지에 대해 고민에 빠지면서 아내와 결별을 암시합니다. 아내는 어느날 딸을 데리고 독일로 간다고 선언을 합니다.


이내 무기력증에 빠진 케이든에게 두가지가 찾아옵니다. 하나는 알 수 없는 질병이며 다른 하나는 연극 연출가에게 주는 상당한 액수의 공연 지원금입니다. 그는 치료와 연극 기획을 뱡행하지만 실상은 무척 외롭습니다. 그의 곁에는 극장 매표소에서 일하는 여직원과 여배우가 맴을 돌지만 그의 마음은 공허하기만 합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정열을 연극을 완성시키는데 쏟아 붓기로 합니다. 무려 17년 동안, 그러는 사이 배우와 스탶들은 죽거나 떠나는 일이 생기고 도대체 이 연극이 완성은 될까 의심이 드는 사이 케이든은 또다른 현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의 곁에는 많은 여자들이 머물다 떠났지만 가장 마음에 두고 있던 것은 전처와 자신의 소생인 딸입니다. 수소문 끝에 자신의 딸이 독일에서 타투 부작용으로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가지만 그녀는 아버지를 외면합니다. 케이든은 이제 자신도 서서히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해집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준비는 극 중반이후 무척이나 복잡한 미쟝센을 보여줍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트가 마치 모래성처럼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안의 배우들의 동선은 이해가 안될 정도로 혼동스럽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케이든의 대역을 맡은 배우의 움직임입니다. 마치 아바타나 클론이나 되는 듯 그는 주동적으로 나서서 배우들을 훈계하거나 연기지도를 합니다. 심지어 케이든의 두 번째 와이프에게 스킨쉽을 하기까지 합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매표소 직원이었던 헤즐릿도 비서가 되는 데 그의 대역까지 나서서 오지팔 넓은 행동을 해대니 누가 누군지, 현실인지 연극속의 장면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게 됩니다.

물론 그런 장면을 넣어둔 이유는 있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인생은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는 이야기가 하고픈 것이겠죠.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장례식 장면이 수차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부모, 전처와 딸, 그리고 아는 몇몇 사람들이 죽으면서 그게 연극속의 한 장면으로 오버랩됩니다. 물론 죽는 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 마지막 엔딩장면속 대사는 다이(die)였습니다.


시네도키라는 용어는 제유법입니다. 예를 들어 빵만 먹고 살수는 없다고 말할 때 이 빵은 단지 브레드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섭취할 수 있는 먹거리 전체를 비유하는 것이니 이때 제유법을 사용한 문장이라고 하죠. 그럼 영화 시네도키 뉴욕은 무엇을 무엇으로 비유한 것일까요? 그 해답은 영화를 직접 보신 분들의 마음속에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