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페어 러브 - 늙은 오빠, 고양이같은 어린 여자와 사랑하다

효준선생 2010. 1. 4. 00:56

 

 

 

 

아래 두컷은 명동 신세계 백화점 10층의 문화홀

 

 

 

영화는 많은 경우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에 의해 골격이 만들어지고 살이 붙고 피가 흐르는 인체와 같은 형상으로 만들어지곤 하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비슷한 내용임에도 어떤 것은 멜로가 되고 어떤 것은 범죄스릴러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채무자가 빚을 다 갚지 못한 채 사망하고 그에게 남은 것은 말만한 딸자식뿐이라고 한다면 채권자, 좀 악질같은 넘들이라면 그 채무자의 딸을 어떻게 한다는 설정은 범죄물이 될 것이고 상대적으로 가능성은 낮지만 그 딸이 채무자를 좋아하게 되고 그로인해 돈 받기를 포기한 마음 착한 채권자는 헬렐레 한다면 그건 멜로가 되는 것이죠.

이렇게 처음부터 좀 낯선 설정으로 시작한 영화가 바로 페어 러브입니다. 주인공역을 맡은 안성기는 제 기억으로 나쁜 역은 한 번도 맡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늘 어리숙하고 진솔되며 터프함 보다는 유약한 소시민적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죠. 한때는 원톱으로 잘나가던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배우 안성기에게 2류 배우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만큼 그가 보여준 내공은 한국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커다란 자양분으로 녹아 있기 때문이죠. 투톱으로 나왔던 칠수와 만수가 생각이 나네요.  라디오 스타때는 그때의 박중훈을 케어하는 역할정도로 축소되었지만...오늘 그의 주름살이 더 깊어졌음을 보았습니다. 나이탓이겠죠. 하지만 사진기를 들고 멀리 시선을 둔 옆모습은 참 멋지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딸자식 뻘 되는 여대생과 로맨스에 빠집니다. 바로 위에서 말한 상황에서죠. 그는 전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돈 8천만원을 빌려주었지만 받을 길이 없고 도리어 뜻하지 않게 특이한 성격의 여대생 남은의 구애를 받게 됩니다. 쉰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그는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주변에서는 미쳤다는 말로 그를 공박하지만 남은의 모습을 보면 그게 동정인지 자애인지 연민인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입니다.

남들 다하는 이벤트도 해가면서 신세대의 취향에 맞춰가려고 하지만 자꾸 엇박자가 나고 남은 그런 그를 자기 세상에서 조금도 나오려 하지 않는다고 도리어 구박을 합니다.

제가 보기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도요. 오히려 남은이 더 이상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방 벽을 긁어대고 멀쩡한 여대생이라고 하는데도 다른데는 별로 취미가 없어 보입니다. 왜그런 모습으로 나올까요. 처음에도 혹시 남은도 사기꾼이라는 질책을 받았던 자기 아버지를 닮아 아버지 친구를 혹하게 해서 금전적인 이득이라도 취하려는 건가 의심도 해보았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바로 이 감정선의 조합이 어긋나면서 시작합니다. 분명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나이차가 아닌 현실적인 직시에서 꼬인 문제라고 보입니다. 영화 막판에 형만은 어디가 아픈지 병원에 입원을 합니다. 결국 그건 남은보다 훨씬 오래살아야할 그의 체력적 문제를 지적한 것이고 카메라 수리만으로는 생활비조차 변변하게 마련하지 못할 그의 경제력을 문제삼는 것입니다.

나이차는 사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분명히 그건 극중에서 해결된 것으로 보입니다. 천애의 고아지만 젊고 이쁜 아가씨와 결혼하겠다는데 쉰 넘은 노총각 주변인들이 말릴 이유는 없겠죠. 하지만 결국 그게 아닌 현실로 돌아오면 둘의 문제는 너무나 자명합니다.


엔딩컷을 앞두고 남은은 혼잣말처럼 다시 시작하자고 중얼거립니다. 반복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그때 형만은 이미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데, 과연 그들이 평생을 함께 한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남은은 남편으로서의 형만이 아니라 어릴적부터 비워둔 엄마, 아빠의 자리를 형만으로 보면서 채워넣으려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전체적인 영화 흐름은 그다지 매끄럽지 않습니다. 내러이션이 이어지는 중간에 뚱딴지 같이 엉뚱한 커플의 폭죽놀이가 반복적으로 비춰지고, 툭툭 끊기는 편집도 깜짝 깜짝놀라게 합니다. 그리고 남은이 왜 생뚱맞게 형만을 좋아하는지 그 감정의 출발이 좀 억지스럽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안성기의 중심잡은 포지션과 그의 애드립 수준의 즐거운 농담은 많은 웃음을 선사했고 롤리타 신드롬을 조금 가지고 있는 중년 남성이라면 나도 저런 사랑을 해볼까 하는 즐거운 망상(?)을 해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