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용서는 없다 - 그 남자의 복수, 살아있는 기억의 고통

효준선생 2009. 12. 30. 00:11

 

 

 

 

 

인질을 잡아놓고 승부를 보려는 영화는 처음부터 긴박감을 줄 수 있지만 대개의 경우 정의의 주인공이 나쁜놈과 싸워 이기고 무사히 인질을 구해낼 것이라는 전제가 있어 개연성은 좀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아주 간혹 그 인질을 구해내지 못하고 심지어 그 정의의 사도 역시 제 명에 살다 가지 못한다는 설정은 충격적이면서도 극 종반까지 손에 땀을 쥐고 스크린을 지켜보던 관객들을 털썩 주저앉게 만드는 힘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가 드문 이유는 많은 관객이 비교적 착한 결말을 원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무거운 한국영화 한편을 볼 수 있었다.

영화 용서는 없다의 포스터에는 세 명의 배우가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다 보는 장면이 찍혀 있다. 그런데 정면을 응시하는 설경구와 한혜진과는 달리 류승범은 설경구의 시선앞에서 측면을 응시하고 있다.

용서란 단어는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시혜를 하는 단어다. 과연 세 명의 배우는 누가 누구에게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을 것인가 바로 이점이 이 영화의 단서가 되고 결말이 된다.


영화 초반은 범인이 아주 경쾌한 스텝을 거쳐 신입 여형사에게 날름 잡혀버린다. 그다음 수순은 그를 범인으로 단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수집 단계에 접어들어야 하는데 여기에 끼어드는 인물은 형사가 아니라 전문 부검의다. 죽은 자의 사망원인을 집어내는 역할의 그가 왜 살인용의자에게 목을 매는 것일까


군산앞바다는 4대강중의 하나인 금강하구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곳엔 배와 어부들의 왁자지껄한 남도 사투리가 아닌 재벌 건설사들의 인부들과 기계음으로 가득차 버리고 말았다. 그 와중에는 오래전부터 터줏대감으로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도 있었고 그들은 고향을 잃고 하염없이 그 기능을 상실한 강과 바다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도시사람들이 내려와 그곳에서 피지도 못한 꽃을 짓밟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풀려나고 그 과정에는 돈이라는 커다란 유혹이 악마처럼 활개를 쳤다. 세상이 점점 혼탁해져감에 그걸 목도한 젊은이에게 세상은 제 생명보다 더한 복수를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아주 우연하게 아니 그게 필연인지 몰라도 내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과오가 누군가에겐 피눈물로 되갚아 주어도 시원찮은 복수의 사단이 되고 나는 몰랐다고 해서 그게 유야무야 되지도 않는다. 영화 용서는 없다는 결국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아니 사는 것 보다 죽음을 선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복수를 하고 말겠다는 그 젊은이의 한풀이인 셈이었다.


영화 줄거리는 구불거리는 듯 보이지만 관객들이 할 수 있는 추리는 쉽다. 그 이유인즉, 범죄의 단서는 범인이 툭툭 내 던지고 있고 관객들은 마치 자신이 사건의 단서를 맞춘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장면은 과거의 아니면 미래의 사건의 단서로 제공되는 점은 대단한 공력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런 장면들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추측이 가능하지만,


범인은 하고 나온 몰골로 봐서는 류승범이라고 판단하겠지만 그가 범인이라는 것, 그리고 그가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관객의 추리의 결과물로 그 몫을 돌려 놓지 않았다. 맨앞에 말한 것처럼 인질로 잡힌 딸을 구하려는 설경구의 부정이 과연 성공할 것인가 아니면 또다른 함의를 가지고 종결될 것인가를 해결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이 충격적인 영화의 결말을 그나마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류승범, 설경구, 한혜진, 성지루등의 연기는 매우 훌륭했다. 어색하기 그지 없었던 해운대에서의 설경구에 비하면 이 영화 그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었다. 단지 감독의 말없는 내러이션으로 조금 가려진 맛은 없지 않지만, 그 외에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마지막 액션장면의 이음새가 다소 헐겁고 사체 부검때 사용되었던 더미(인체와 흡사한 실리콘 인형)가 그다지 실감나지 않았다는 점(죽은 지 꽤나 시간이 지난 사체가 마치 고무인형처럼 보드라워서 나도 만져보고 싶더라는 것)정도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영화 공통의 기술적인 문제이니 만큼 차차 좋아질 것이라고 위무하고 넘어가자.

정말 무거운 영화, 보고나서 내가 가장 먼저 극장문을 나서면서 한 일은 크게 심호흡을 두어차례 한 일이었다. 숨소리 마저 잦아들게 만든 충격적인 결말, 영화 용서는 없다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