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서울독립영화제2009 - 닿을 수 없는 곳외 단편작

효준선생 2009. 12. 16. 01:05

 

닿을 수 없는 곳

 

수진들에게

 

 

17일 까지 명동 중앙시네마,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서울 독립영화제에 다녀왔다. 시간이 남아서 선택한 영화는 단편경쟁부분 1에 출품된 4개의 작품이다. 4편 모두 주제가 무거웠지만 결과론적으로 만족한다. 지난주 금요일 본 단편경쟁부분 4에서는 단 한편도 건진게 없어 아쉬웠던 것에 비하면... 

그 후  2009  18분


카메라 앵글이 교복을 입은 여고생 은수를 따라간다. 배경은 어둡다. 가로등 불빛이 흔들리고 누군가 그녀를 따라잡는 것처럼 보인다. 이윽고 뒤를 밟는 사내의 발자국, 사내는 은수에게 학교 선생이 다쳐서 도울 학생이 필요하다며 자신의 티코자가용으로 유인한다.

하지만 은수는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 근처 세탁소로 들어간다. 직감적으로 사내가 나쁜 사람임을 알아챈 듯 하다.

며칠뒤 같은 학교 학생 하나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학교에 전해진다. 은수는 그날 본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경찰에 알린다. 그녀가 그린 몽타주가 인근에 붙여진다. 하지만 실종된 여학생은 변사체로 발견된다.

영화 그 후는 적지 않게 발생되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이면에 누군가는 운좋게 피해갔을지 모른다는, 혹은 누구라도 범죄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이런 범죄의 과정을 속속들이 알게 된다는 가정은 살아남은 자에게도 끔찍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죽은자에게도 간신히 살아남은 자에게도 치명적인 위해가 되는 범죄, 저지른 자는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쓰지만 대체 사람이 사람을 해하는 정글같은 세상, 누굴 탓해야 하는 것일까


흩날리는 것들  2009 17분


가난한 부부가 있다. 남자는 측량기사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런 저런 유품을 정리하지만 돈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 쓸데 없는 헌책들과 빚만 남겨졌다. 그 역시 가난 때문에 임신한 아내를 데리고 좁은 집으로 이사를 한다.

어느날 보험사정인이 찾아와 생전에 아버지가 생명보험에 가입했으니 약간의 보험금이 지급될 것이라고 한다.

남자는 자신이 받을 돈이 아니라고 했지만 흔들린다. 측량을 하는데 건너편에 꽂아둔 붉은 깃발이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보험 사정인이 다시 찾아왔고 그들은 장례비조로 약간의 돈을 받는다. 장례식이 있는 산소 근처에서 남자는 인부와 포크레인 기사에게 줄 돈을 떼어 세고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고 남자의 눈에는 공사장에서 본 그 붉은 깃발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수중에서 펄럭거리는 지폐들. 어쩌면 아버지의 노자돈이지도 모르겠다.

영화 흩날리는 것들은 매우 폐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붉은 깃발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 같은데 도무지 알 수 없고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도 굴곡이 없어보인다.

마지막 장면 돈을 움켜쥔 그의 손아귀에서 지폐가 바람에 흩날릴까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이런 의미의 광폭적 도약은 독립영화에서 가장 폐쇄적인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그 속을 도통 알 수 없으니...


수진들에게  2008  20분


영화 수진들에게를 보기전 아마 동명이인의 여자들의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는 한사람이다. 그런데 복수의 들이 붙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수진은 할인마트에서 판촉사원으로 일하지만 늘 돈에 쪼들린다. 게다가 일하는 태도도 상냥스럽지 않다. 무표정한 얼굴로 사무적으로 일하고 있다. 어느날 한 여자가 명품백을 들고 와서 수진이 파는 만두를 시식하고 사간다. 그런 그녀는 무척 당당해 보였다. 퇴근길에 수진은 만두를 사간 명품백을 들었던 여자가 여성의류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것을 목격한다. 며칠후 수진은 그곳에서 적지않은 돈을 내고 옷을 구입한다. 그리고 점원이 보란 듯이 그옷을 입고 계산을 한다. 

우연히 버스를 같이 탄 수진과 여자,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뀔 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수진의 동료들은 구조조정으로 심란하다. 그러면서도 수진을 따돌린다. 수진은 동료들과 말도 안하는 사이다. 그중에 한명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지만 수진은 전혀 댓꾸하지 않는다.

며칠후 그녀를 제외한 다른 직원 대부분이 짤렸다. 수진만 살아남았다. 며칠전 팀장앞에서 다른 직원들의 행동에 대해 일거수 일투족을 고해바치는 수진.

시간이 흐른뒤 수진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준 동료의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녀의 방문은 쉽지 않다.


영화 수진들에게는 수진이라는 여자를 통해 역지사지의 입장, 그리고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비정규직 직원의 한계를 그린 영화다. 악행을 저지르고도 얼굴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 여주인공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닿을 수 없는 곳  2009 29분


오늘 본 네편의 단편중에서 가장 수작으로 꼽을 수 있는 영화, 허름한 여관, 그안에서 병든 엄마, 5살쯤 되어보이는 여자아이, 그리고 20살 남짓한 청년이 한 방에서 기거하고 있다. 청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알바를 해서 돈을 모으고 있다. 전단지, 주유소등에서 일하지만 벌이는 신통치 않다. 게다가 입영통지서가 날아온다. 청년은 부양가족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병역을 면제받고자 하지만 담장직원은 서류를 떼어오라고 한다. 서류를 떼어오지만 그에게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막막해 한다. 청년의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 가족을 버리고 도망간 상태가. 청년은 주소를 들고 아버지가 있다는 곳을 찾아가지만 그곳으 이미 철거가 진행중인 서울의 산동네다. 그곳에서 병든 몸으로 마치 동물처럼 살아가는 아버지, 청년은 아버지가 없어져야 자신이 군대를 가지 않고 엄마와 동생을 부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흉기를 들고 찾아간다. 하지만 청년은 차마 흉기를 꺼내지 못한다.


영화 닿을 수 없는 곳은 인상적인 나레이터로 시작한다. 지옥에서는 서로 밥숟가락을 휘두르며 남의 것을 빼앗아 먹으려고 하고 천당에서는 자신의 밥숟가락으로 남의 입에 밥을 넣어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엔딩에서는 예전 소련에서 화가들에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하려고 팔을 부러뜨려 오지로 내쫗게 되자 그곳에서 서로가 서로의 팔이 되어 밥을 먹여주었다는 말로 마무리 짓는다.


좁은 여관방, 식사를 하기 위해 밥상 네 귀퉁이에 앉은 가족. 달라진 것은 없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가족의 이름으로, 그들에게도 희망의 빛이 내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