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시간의 춤 - 천개의 불안, 하나의 희망이 추는 춤

효준선생 2009. 11. 26. 00:19

 

 

 

 

 

한 명의 감독의 작품을 이틀 연속 본다는 것도 드문 일이다. 거기에 한 편은 연극으로 다른 한편은 영화로,

연극 더 매지션스는 송일곤 감독의 마법사들을 모티프로 무대에 올린 무비컬이며 오늘 본 영화 시간의 춤은 쿠바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안에서 살고 있는 한민족의 피가 흐르는 군상들의 입을 통해 본 일상을 그린 영화다.


100년전 상자의 여인이라고 불리던 여자가 있다. 부모가 중국인에게 팔아 넘기려고 하자 멕시코로 가는 배에 몰래 올라탄 여자, 상자에 숨겨주었다고 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 나중에 쿠바로 돌아오지만 그녀에게 다시 고국은 갈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그 배에 탄 사람들은 1천명, 그들은 1천개의 불안을 갖고 있었고 희망은 달랑 1개였다.

꽤 오래전 영화화 된 애니깽 역시 이들을 그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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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간의 춤은 영화속 발레리나가 춤을 추는 장면에서 이하나의 나레이터에 의해 두 번 언급된다. 100년전 돈을 벌기 위해 혹은 추악해진 조국을 떠나 머나먼 이국땅으로의 불편한 여정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오늘날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들이 뿌린 씨앗은 원형과 닮거나 혹은 변종으로 태어나 오늘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세상을 떠나면 이제 처음 그곳에 도착했던 사람과 같은 모습을 한 사람은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그의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한국이라는 존재의 막연한 동경.


발레리나는 그 할아버지의 후손이다. 눈매가 아시아 사람같다는 말을 들었다는 그녀는 역시 아시안의 피를 받아서인지 작은 키 때문에 정식으로 발레리나가 되지 못한 채 코치로 일하고 있다. 내가 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인데도 쿠바에서 더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은 그를 아마도 아시안의 피가 섞여있다고 분별하는 모양이다.


영화속에서 10여명의 한인과 본토인의 혼혈이 나온다. 혹은 더 나이든 사람은 한인의 모습 그대로를 하고 있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한국에 대한 기억, 토막말을 하는 한국어, 그리고 이국의 땅에서 만든 사랑이야기, 살아온 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운 그들, 당신들의 조국인 쿠바이며 쿠바와 한국이 야구시합을 하면 쿠바를 응원한다는 말이 전혀 꺼끌거리지 않았다. 그저 한국이라는 말은 생각하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아련한 떨림, 그거면 족하다.


영화 시간의 춤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면서 저들은 가난 때문에 배를 타고 이제 남의 나라 사람으로 살다 생을 마감할테고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당근에 회유되어 나팔수로 살아온 작자들은 지금도 그 후손에게 음전을 내려주사 떵떵거리고 살고 있으니, 엔딩장면에 보여진 쿠바의 살사가 아니라 한국의 아리랑이었으면 어땠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