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백야행 - 지독한 운명의 두 아이,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다

효준선생 2009. 11. 24. 00:23

 

 

 

 

영화 백야행을 보면서 계속 떠오르는 한가지 생각, 우와 이 대단한 구성의 힘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는, 일본 원작 소설을 읽어본 바 없지만 활자의 연락(連絡)을 스크린위에서 편집해낸 감독도 대단해 보였다.


시작부터 칭찬일색이라 좀 그렇지만 백야행은 올해 내가 본 영화중 다섯손가락안에 넣을 수 있을 정도의 수작이다. 개개인의 차이가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디텍티브한 스릴러에다 액션과 멜로를 적절하게 섞은 이 영화는 그야말로 구미에 딱이었다. 사전정보는 얻지 않았다.

그냥 스크린을 응시하면서 느껴보고 싶었다. 그렇게 10분동안 이야기 전개가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 등장인물이 왜이리 많은 건지, 동명인물이 뒤죽박죽 섞이며 다소 난감한 시츄에이션이 되면서 내가 머리가 나쁜 건가를 자책할때쯤 조금씩 실마리를 풀어주는 센스.


등장인물인 많지만 모두 여주인공 미호와 남주인공 요한과 관련이 있다. 둘다 어쩜 저렇게 기구한 운명을 지니고 살까 안타까웠다. 단순하게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만을 엿보고 느낀 바가 아니다. 어린 시절 분노를 힘으로 표출해내면서 그 둘의 지독하고도 아픈 상처는 둘을 이어주는 매개가 됨과 동시에 사회적인 법률의 테두리안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간의 굴레가 되어 버렸다.


지아는 미호의 옛날 이름이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돈을 위해 어린 그녀는 요한의 아버지의 성적 노리개가 된다. 물론 지아의 엄마의 묵인하에, 요한은 그런 아버지를 죽이고 지아를 구해낸다. 그로부터 14년후 미호는 돈많은 이사와 가깝게 지내고 요한은 그런 미호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본다. 그런데 조금씩 그들을 조여오는 정체가 있다. 한동수 형사와 경찰들, 요한은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려는 인물들을 하나씩 죽여 마당에 묻는다.


한편 자신의 아들을 자신의 실수로 사건현장에서 죽게 만든 과오로 힘들어 하는 한동수 형사, 그는 어린 시절, 미호와 요한을 만나 친근감과 연민의 정을 느끼면서 사건의 끄트머리를 놓치 못한채 살아간다.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요한은 미호의 회사 개업식에 참석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둔다. 하지만 그것은 그 둘이 약속했던 아름다운 미래가 아니었다.


영화의 엔딩은 이 영화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따로 다른 벤치에 앉은 미호와 요한 절묘한 폴라로이드 샷에 담긴 두명의 아이들의 포즈는 가까이 갈 수 없는 하지만 함께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영화는 상당히 자극적인 부분이 많았다. 존속살해라는 공통의 운명을 지닌 두 어린 아이의 운명적 만남, 영화시작과 동시에 더 이상 무미건조할 수 없는 손예진과 차이사(박성웅)의 정사장면, 그리고 요한에 의한 폭력의 위험에서 살아 돌아온 차이사의 딸을 위로하기 위해 나신의 모습으로 위로하던 손예진의 모습, 요한이 묻었던 땅속에서 갑자기 튀어 올라온 손, 요한이 가위로 자신의 심장을 정확히 찌르는 장면등,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일까 아직도 궁금한 “난 모르는 사람이예요”라고 하면 허공을 응시하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손예진의 옆얼굴.


손예진, 고수, 그리고 형사 전문배우(?) 한석규의 연기는 훌륭했다. 거기에 미호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던 어린 배우(주다영). 마치 올드보이의 강혜정을 보는 것 같았다. 하기사 이 영화 올드보이에서의 충격적인 장면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었다.


화려하기 그지 없는 시퀀스, 물흐르듯 자연스러웠던 조직감, 다소 아쉬웠던 전반부 과거씬에서 현재씬으로의 갑작스런 튐만 없었다면 이 영화, 각색이 대단히 매력적이다.


하필 대작들과 붙어서, 흥행을 기대할 수 있을까? 어려운(집중하면서 머리를 써야하는) 영화일수록 “너 그거 아직도 안봤니” 하고 입소문을 타야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