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나는 곤경에 처했다 - 왠지 홍상수의 냄새가 났다

효준선생 2009. 11. 26. 00:05

 

 

 

 

 

 

 

 

얼핏 서른 즈음의 남자 선우, 그의 여자친구 유나의 말에 따르면 그는 모 지방신문사에서 주최한 신춘문예 시부분에서 가작으로 입선한 전업(?) 작가라고 하지만 그의 행색은 백수다.

그의 일과는 거의 없어보인다. 자다가 일어나 선배를 만나거나 친구를 만나고 그들과 술을 마신다.

그에게는 절친한 선배 승규가 있다. 하지만 그도 딱히 뚜렷한 직업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선우에게 충고를 해줄 수 있고 조금 나은 아파트에서 산다는 것, 그 이유로 선우는 제 집 드나들 듯 기숙을 한다.

이런 형편이니 여자친구가 아버지에게 자기의 남자친구로 소개해 주기도 민망하다. 용기를 냈지만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고 뻗었다. 첫 번째 헤어짐.


선우는 선배를 꼬드겨 그녀가 있는 강원도 동해에 간다. 거기서 선배는 티켓을 끊고 선우는 여자친구를 만나 용서를 구하고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겨울바다가 멋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한다. 다방 아가씨때문에 오해를 사는 바람에 다시 헤어진다. 두 번째 헤어짐, 선우는 조금씩 지쳐간다. 그때 그의 마음을 혼란하게 만든 여자, 바로 선배가 마음에 두고 있는 출판사에 다닌다는 누나뻘 되는 여자 순애.


유나의 집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선우에게 문자가 온다. 자기 곁에 있어달라고, 마지못해 응해준 선우, 하지만 뜨악하다.


동창회 모임에서 다시 만난 선우와 유나는 조금만 더 현실적으로 살기로 하고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뜻밖의 사고와 조우한다.


영화 나는 곤경에 처했다는 현실감각이 아주 뛰어나다. 내가 아는 후배가 이러고 살 것 같아라며 공감100%다. 현실이 어쩔 수 없다는 비관론 적인 시각인 듯 싶지만 주인공 선우는 꼭 그렇지도 않다.

술에 취해 그가 외친다. 너는 직장인, 너는 정규직, 근데 난...

하지만 넉살도 좋다. 선배에게 여자친구 만나러 가야 한다고 돈을 빌리기도 하고, 잘나가는 변호사 친구에게 예전에 가지고 간 책을 돌려달라고 어기장을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여자친구에게 돌아와 달라고도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어쩜 이렇게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닮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사건 사고도 없지만 소소한 일상을 그리고 있으며, 인물을 따라다니는 카메라, 롱테이크, 술자리가 유난히 많고 그안에 오해와 이해를 섞어 놓은 것, 여자는 결국 남자에게 있어 수동적인 존재라는 암시. 관객들로 하여금 키득거리게 만드는 페이소스와 엉뚱한 수사로 풀어내는 특유의 이죽거림. 물론 거친 맛이 있던 홍상수 감독 작품에서 씁쓰레한 맛을 뺀 부드러운 라떼 같다고나 할까


영화 나는 곤경에 처했다는 젊은 시절 하고픈 일을 위해 날개를 펴기도 전에 접어야 할 지도 모르는 한 젊은이의 일상을 블랙 코미디처럼 버무려낸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