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저녁의 게임 - 가정폭력으로 시든 꽃, 성적자극으로 매조지하다

효준선생 2009. 10. 29. 01:21

 

 

 

 

 

 

 

 

영화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는 인물의 정형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고통이 수반된 과거에서 훌쩍 뛰어넘어 지금 그들이 표출하고 있는 정신적 갈등구조가 어찌보면 영화감독에게는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재일테니 말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범죄 액션물의 범인들은 대개 이 범주에 속한다. 그래서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라는 둥, 그럴만 했군이라는 둥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한국 영화역시 다름아닌다. 그들은 대개 흉악범으로 많이 등장하는데 문제는 여성의 경우 그것이 성적인 폭압으로 제한 된다는 점에서 아쉽게 드러난다.


영화 저녁의 게임의 여자 성재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 의해 자행된 가정폭력의 희생양이었다. 심하게 말해 그것 때문에 엄마와 오빠가 죽었다고 한다면 그곳은 지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그녀는 장애를 안고 여태 아버지와 살고 있다.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만 빼고는 알아듣고 보는데 지장이 없다. 게다가 매력적으로 아름다운 외모도 지녔다. 성인이 된 그녀는 왜 폭력의 그림자가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아버지의 그림자속에서 살고 있을까?


극중 아버지는 이미 중풍에 걸려 한손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간혹 실없는 소리를 하는 노인이다. 하지만 그는 딸에게 밥을 먹여 달라고 하고 심지어 목욕을 시켜달라고 한다. 이때 노인은 남성으로서의 성적 학대를 다시 딸에게 강요한다. 그 본성은 시간이 이미 많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이 상황이 되도 딸은 여전히 순응한 채 서성거리기만 할 뿐이다.


성재에게는 아무도 없는 듯 싶었다. 하루는 탈옥범이 동네에 나타났다가 그녀와 마주친다. 그리로 그가 벗어놓은 푸른 색 죄수복은 그녀에게는 도리어 자유를 꿈꾸는 날개가 되었다. 그는 그옷을 입고 마스터베이션을 한다. 마냥 달뜬 모습은 탈옥범이 자유를 얻었듯 그녀 역시 자유를 갈구하겠다는 표정이다.


영화 저녁의 게임은 매우 불친절하고 고의성이 느껴질 정도로 거칠다. 무엇이 그럴까. 저항하지 못하는 여성 장애인에 대한 지속적이면서도 은밀한 성적 가학, 대사 한마디 없이 표정과 움직임으로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그녀가 농아가 된 것은 입이 아니라 귀가 문제였었다.


배우들은 마치 자신의 껍데기를 홀랑 벗겨내듯 혼신의 연기를 보여주려고 한 듯 싶었다. 하지만 꼭 그렇게 치부를 다 드러내야만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슈는 잘짜여진 시나리오와 편집을 비롯한 전개방식에 있는 것이지 사회적 일탈을 부각시켜 “ 이영화 이렇대”라고 입소문을 내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될 일이다. 한국영화에서 남녀 배우의 성기가 이렇게 여러번 나온 것도 처음인 듯 싶다. 하지만 전혀 보고 싶지도 나오지 않았다고 애석하게 생각지도 않았다면 감독이 생각하는 효과는 없이 배우들의 에너지만 빼먹은 셈이다. 


생각지 못한 장면이 연신 등장하면서 스크린 속에 배치해놓은 미장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추하는 것도 피곤해질 무렵 영화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끝났다. 하지만 피학대의 대상이었던 여자가 해결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앞으로도 전혀 좋아질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그녀의 행위를 지켜본 아이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를 전달한 것은 아닌지 안쓰럽기만 했다. 

 

 

 

                                                        10. 28 중앙시네마 3관 인디스페이스에서의 GV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