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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함정 - [리뷰] 낯선 것에 대한 경계

효준선생 2015. 9. 29. 07:30

 

 

 

 

 

영화 함정은 영화를 보는 내내 좀 빨리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정말 함정에 빠진 것처럼 그래서 몇 분 뒤엔 어떻게 좀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런 공포심이 유발된 데에는 제한된 공간에 갇히다시피 한 피해자들과 가공할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한 사내 때문이었다.

 

 

배우 마동석은 그간 몇 편의 영화를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험악한 인상과 터질 듯한 몸매를 악역에서만 쓰지 않았다. 베테랑에서 강렬한 단역 출연 만으로도 호평을 이끌어낸 것을 보면 그 자신이 자신의 외모와 그대로 대비되는 역할을 일부러 피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 그가 최고의 악역으로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그의 등장과 몇 가지 미쟝센을 통해 스멀스멀거리는 공포심을 제어하기 쉽지 않았다. 이 영화가 오로지 그의 힘만으로 이끌고 나갔다면 다른 역할에서는 너무나 무기력한, 그리고 타인의 사탕발림에 너무나 현혹되기 쉬운 현대인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거나 자꾸 유산되는 스트레스로 인해 부부는 새로운 여행을 생각해 낸다. 한적하다 못해 서늘한 기운마저 이는 외딴 섬 중에서도 외딴 집. 닭 백숙을 하며 가끔 오는 손님을 맞는 식당 주인과 묘한 느낌의 여자. 손님과 주인으로 마주한 네 사람은 앞으로 다가올 자신들의 운명을 어쩌면 만남의 시작에서부터 느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급하기엔 껄끄럽지만 이 영화는 스와핑에 대해 폭력적으로 다루고 있다. 무료한 일상을 깨기 위해 서로의 것을 교환한다는 의미로 인륜을 저버린 행위지만 이 영화는 노골적이면서도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을 취한다. 그 모든 것이 폭력으로 뒤덮인 공포에 의한 눈가림이라 할 수 있겠다.

 

 

공포영화 중에서도 하나의 장르라 할 수 있는 슬래셔 무비 형식을 빌어온 영화 함정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게 갈리고 일방적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피해자에게 정말 너희들, 바보냐. 왜 거기에 머물고 있냐고 훈수라도 두고 싶은 심정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 닥칠 상황이 어떤 지 뻔하지만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를 느꼈을 때의 공포는 차라리 몰랐던, 그래서 일차원적 육욕을 즐길 때가 차라리 나았을 거라 본 모양이다. 폭풍 같은 엇갈린 관계의 다음 날, 이들의 눈빛은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그럴 수 있을까. 정조를 지키지 못했기에 자결이라도 하라는 조선 열녀의 예를 든 게 아니다. 폭력이나 다름없었던 그 일이 지난 뒤에도 그곳에 머물 수 있는 담대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지존에 가까운 식당 주인과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하는 벙어리 여인의 사연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나중에 추가로 그곳에 들어온 커플이 당한 참극으로 미뤄 볼 때 그의 초대는 아주 계획적이고 그의 범행은 완전범죄라는 사실만 확인해줄 뿐이다. 공권력은 차치하고 타인에게 도움조차 바랄 수 없는 상황에 그들의 운명은 그저 운에 맡길 수 밖에 없는 애매한 상황이 되고 만다. 사실 이 영화의 약점은 엔딩에 있다. 이런 영화의 해결은 단순하다. 악한 자에겐 응징이, 이유없이 당한 자에겐 자비를. 그런데 그 과정이 매끄럽지도 않고, 자꾸 휴지기를 줘야 하는 상황이 이상하다.

 

 

SNS를 통해 알게 되었다지만 여전히 얼굴은 상대를 이해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얼굴은 자신의 정체성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만약 식당 주인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유혹에 가까운 호객행위를 했다면 과연 얼마나 말려들었을까 얼굴이 다가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의 경계심은 들지 않았을까 친절을 가장한 덫에 걸리는 건 순식간이다. 그리고 무력을 이겨내지 못하는 밀폐된 공간이라는 함정은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죽음이다. 의심은 병이라지만 그걸로 명을 재촉할 이유는 없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함정 (2015)

Deep Trap 
6.9
감독
권형진
출연
마동석, 조한선, 김민경, 지안, 강승완
정보
범죄, 스릴러 | 한국 | 96 분 | 2015-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