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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 [리뷰] 가축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효준선생 2015. 4. 23. 07:30

 

 

 

* 씨네필 소울 뽑은 다큐멘타리 추천작

 

 

 

 

고기를 안 먹기로 한 지 1년여의 시간, 딱히 채식주의자라고 불릴 것도 없다. 그저 소, 돼지, 닭 같은 아주 일반적인 육고기가 먹기 싫어진 것뿐이다. 종교적인 신념도 아니고 식성이 갑자기 바뀐 탓도 아니다. 작년 이맘 무렵 건강이 좋지 않았고 의사가 고기를 좀 줄이는 것이 좋겠다는 소견을 몸이 먼저 받아들인 탓이다. 고기를 섭취하던 시절에는 몰랐던 것 중의 하나가 생각보다 너무 많은 음식들이 고기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탓에 밖에서 주로 식사를 하다 보면 간간한 분식이나 면류 같은 탄수화물 종류뿐이었다. 신기한 건 그렇게 빼놓지 않고 들렀던 마트 정육 코너를 멀리 돌아서 가게 되고 먹방에서도 고기를 신나게 먹는 장면들이 좋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일년 내내 고기 한 점도 먹지 않은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 보면 피치 못하게 입에 들어가는 고기 흔적들. 아무 맛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다 보니 일부러 취식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면 몸에 변화가 있냐고 궁금해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잘한 의학적 소견과 더불어 세상엔 고기 말고도 먹을 것들이 많다고 이야기 해준다. 전엔 거들떠도 안보던 각종의 채소들, 그런 푸성귀도 씹다 보면 맛이 난다. 신기한 발견이다. 그럼에도 고기를 먹었던 그 오랜 세월의 습성이 문득 드러날 때가 있긴 하다. 고기의 형태가 보이지 않는 경우인데, 유혹이 될 수도 있다. 고기 맛이 아닌 고기 맛을 살리기 위한 양념 맛에 홀린 것이리라. 이렇게 난데 없이 고기 이야기를 늘어 놓은 것은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때문이다.

 

 

영화 연출자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황윤 감독은 그녀가 아이를 낳고 보다 좋은 먹을 거리에 대한 관심의 시작에서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돼지 사육농가를 찾으면서 이 영화도 함께 제작한다. 몇 년 전부터 빈번하게 발생하는 조류 독감이니, 구제역이니 하는 것들 때문에 그때마다 식육에 대한 소비가 줄곤 했지만 이젠 사람들이 둔감해진 모양새다. 육가공 업체의 지속적인 홍보 탓도 있지만 사회불안을 겁내하는 정부의 안일한 대처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남겨진 것은 실제 소 돼지를 키우는 사육농가와 하루아침에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가축들, 그리고 속내를 알 수 있이 오늘도 맛있게 고기를 먹고 사는 소비자들.

 

 

영화는 주로 돼지 사육농가를 비추는데, 그것과 더불어 자신의 귀여운 아들을 키우는 과정을 오버랩하면서 모돈이 새끼를 낳고 키우는 장면과 대비시킨다. 또 영화에선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로 등장하는 공장형 사육농가도 이들과 비교가 된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스타일의 조리법을 이용해 엄청난 양의 고기를 먹고 산다. 그런 육식 섭취에 대해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입에 들어가는 고기가 어디서 어떻게 사육되고 잡혀 자신의 식탁에 올라오게 되는 지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제기다. 맛만 있으면 되지 그런 것들이 무엇이 문제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생각이 좀 바뀔 수도 있겠다.

 

 

동물 복지를 많이들 이야기 한다. 그건 육식을 거부하는 것과는 좀 다른 궤를 가진다. 자신의 취향대로 고기를 먹는 것이 나쁘다는 점이 아니라 건강한 환경에서 잘 자란 가축은 인간의 입을 통해 몸에 들어갔을 때 선(善) 작용을 할 것이란 느낌 때문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데는 덩치나 가공할 이빨이나 발톱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무수한 동물을 제압할 수 있는 도구의 사용이 용이하고 들짐승을 가축으로 사육하며 섭취하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체력을 극대화 해왔다는 점이다. 반대로 가축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인간을 위해 제 한 몸을 희생해야 할 것이라는 걸 아마 알고 있지 않을까 마치 운명이라고 체념하듯.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인간과 가축간의 관계다. 대신 비좁고 더럽고 질병에 취약한 환경에서 자란 가축의 고기보다 친환경적이고 좋은 먹거리를 취식하고 자란 가축이 그걸 먹어야 사는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영화는 결코 선동적이거나 계도적이지 않다. 감독의 의지와는 동떨어진 생각을 소유한 남편의 시선이 코믹하게 그려지고 돼지 농장의 몇몇 모돈과 새끼 돼지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친근하게 접근한 방식은 무척이나 정서적으로 부담없이 다가온다. 시골에 살면서 가축을 키우고 사는 꿈이 있다. 정을 주고 키워서는 잡아 먹지는 못할테지만 설사 남먹으라고 키우는 것이라도 막 대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윤회같은 걸 믿지는 않지만 나중에 그 돼지가 사람이 되고 자신이 길러지는 가축이 될 지 누가 알겠는가. 고기 반찬이 없으면 밥 안먹는 아이들과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잡식가족의 딜레마 (2015)

AN OMNIVOROUS FAMILY'S DILEMMA 
10
감독
황윤
출연
황윤
정보
가족, 다큐멘터리 | 한국 | 106 분 | 2015-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