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생각보다 맑은 - [리뷰] 하고 싶은 거 할때, 행복해요

효준선생 2015. 1. 13. 07:30

 

 

 

 

어떤 영화? 어느 젊은 애니메이터의 중간 보고서 

 

 

 

어른이 된다는 건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되지만 거기에 따른 책임도 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미성년자때는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막상 성년이 된 뒤에도 무엇을 해야 하는 건지 옳은 판단을 하기 쉽지 않았다. 집안 어른이 시키는 일이나 혹은 대학이라도 다니면 여전히 따라 붙는 과제와 씨름을 하고 남자의 경우 그 즈음 군대에 가서 고참이나 상관의 지시에 따르고 오면 어느새 어른이 된 지도 한참 지난 뒤라는 걸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인생 대부분을 수동적으로 살아 왔기에 무엇을 해도 되는 건지, 혹은 해서는 안 되는 건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다. 한국 청춘들에게 이렇게 어른이 된다는 건 눈치보기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림을 그리기를 참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다. 슥슥 연필을 몇 번 놀리면 어느새 친구들의 초상화가 나오고 선생님들의 칭찬도 쏟아졌다. 하지만 친구에겐 나중에 어떤 화가 같은 게 되는 꿈은 없어 보였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거나 때로는 흙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했다. 혹시라도 거리의 화가가 되려나 싶었지만 그런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평범한 회사에 다니는 샐러리맨이 되었다고 했다. 그의 그림 솜씨가 아까웠다. 영화 생각보다 맑음을 연출한 한지원 감독은 그런 측면에선 행운아다. 그에게 그림 그리기는 자신이 하고 싶을 일을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극히 평범하면서도 하기 어려운 말을 실천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도 독특한 것이 4편의 짧은 애니메이션을 하나로 묶어 옴니버스로 선보이는 건데 젊은 영화학도에게 이런 기회가 흔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4편이 한꺼번에 만들어진 건 아니고 순차적으로 여러 영화제에 선보였던 것들을 한데 모은 것이라 약간의 차별성이 보인다. 특히 원화(原畵)의 경우 많은 부분이 감독이 손을 본 것임에도 마치 다른 사람이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영화의 각기 다른 질감은 보이는 부분만은 아니다. 주인공들은 각각 대학원생, 직장인, 고등학생, 그리고 강아지인데 흐름을 놓고 보자면 공통된 카테고리 안에 넣고 주제를 찾기는 쉽지 않다. 청춘에 대한 성장통 같기도 하고 사랑에 대한 쌉싸름한 기운 같은 것이기도 하고 세상 물정에 대한 신기한 관조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집중해서 보다 보니, 결국 하고 싶은 걸 하라 라는 주장에 수렴된다. 사랑에 서툰 남자에게 모델 일을 하는 여자에 대한 고백, 사내 연애중인 남녀의 엇갈리는 사랑 방정식도 밴드를 하고 싶은 친구와 할 수 없는 친구들 사이의 괴리에서 눈치를 보는 청춘도, 그리고 집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구경하고 싶어 안달이 난 강아지에게도 결국은 할까 말까 망설이지 말고 일단 해보라는 격려 같은 게 읽힌다.

 

 

입체 영화가 흔한 요즘 이 영화를 처음 보는 순간엔 ? 뭐지 이 그림체는하고 당황할 지도 모르겠다. 마치 도화지에 색연필로 그린 듯한 전형적인 2D. 그런데 계속 보다 보면 그게 무척 정감있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 한 번쯤 그려봤을 듯한 색감에 주인공들의 간결한 인상들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리던 그림을 그만두게 되었는지, 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니면 그런 거만 해서는 대학 못 간다는 어른들의 성화로? 그것 보게나 누군가는 꾸준하게 그림을 그려 자기 이름을 걸로 영화를 만들어 냈지만 누군가는 그림 그리는 것조차 기억에서 잊고 살았으니... 중간에 언급한 친구는 바로 내 얘기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생각보다 맑은 (2015)

Clearer Than You Think 
5
감독
한지원
출연
엄상현, 양정화, 한지원, 이홍수, 이호민
정보
애니메이션 | 한국 | 77 분 | 2015-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