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버진 스노우 - [리뷰] 나만 몰랐던 이야기

효준선생 2014. 12. 13. 07:30

 

 

 

 

  어떤 영화? 결말을 보기 전엔 아무 것도 상상할 수 없고 결말을 본 뒤엔 지나간 단서들이 마구 떠오른다

 

 

 

열 일곱의 여자아이에겐 이미 엄마의 조언은 불필요한 나이가 된 걸까? 자기 방에 노크도 없이 들어오는 엄마, 어느새 엄마처럼 가슴이 부푼 자신의 나신을 보던 중 불쑥 화장실로 들어온 엄마를 향해 못 보여줄 걸 보여줬다며 신경질을 부리는 딸에게 엄마는 없어도 되는 존재였던 것일까. 그 해 갑자기 엄마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남은 건 망각일 텐데 그게 잘 안 된다는데 딸의 고민이 있다 

 

                   

 

영화 버진 스노우, 첫 눈이 내려 아무도 밟지 않은 청정한 눈 밭을 걸어본 적이 있었나. 뽀드득 거리며 일부러 발자국을 내보지만 조금은 불안하기도 하고 마치 세상에 자기만 덩그러니 던져진 것 같이 외롭기도 하다. 사위는 적막한 그 곳에서 하늘의 푸른 빛과 온통 백설의 설원, 눈이 오기 전 그 곳엔 온갖 더러움이 가득했을 텐데 그걸 인식할 겨를이 없다. 눈은 그 모든 걸 덮어줄 만큼 크다. 이 영화는 자기도 언젠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 엄마가 될 한 여자의 이야기다.

 

 

하루 아침에 엄마가 사라졌지만 딸과 아빠는 크게 낙심하는 기색이 아닌 게 좀 의아하다. 제 아무리 자신을 업신여겼던 아내지만 빈자리를 느끼지 않는다는 말인가. 제 아무리 이미 다 커가는 딸에게 구속 같은 존재였지만 그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빈자리는 크게 의식되지 않는다. 남자는 남자대로, 딸은 딸대로 예전처럼 그렇게 살아간다.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 처럼.

 

                   

 

이 영화는 엄마가 사라진 뒤 남겨진 가족들의 일상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지를 살펴보는 한 편, 무슨 이유로 엄마가 실종된 건지에 대한 의문을 끝까지 밝히려 하지 않는 스릴러 영화로서의 모습을 유지한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앞 부분에 던져 두었던 여러 가지 단서들이 상기되며 마치 풀려 있는 진주 목거리 알갱이들이 다시 하나로 꿰어지는 쾌감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상당히 독한 기운을 담고 있다. 자신의 부끄러운 단면을 숨기기 위해 저지른 표면적인 행위 안에 이미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이 존재했고 직접적인 행위 가담자가 아님에도 덤덤하게 반응한 걸 보면 이 영화 속의 가족은 그저 쇼 윈도우 가족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앞 동 아파트엔 아직도 불이 켜져 있고 흐릿하게 나마 가족들이 쇼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이 실루엣으로 보인다. 저들은 가족 구성원의 하나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걸까 만약 어느 날 그 중 한 명이 사라졌다고 한다한 가정했을 때 여전히 아무 일 없는 듯 지낼 수 있는 걸까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게 가족이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은 채 시늉만 내고 사는 적지 않은 가족들에게 이 영화는 상당한 충격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버진 스노우 (2014)

White Bird in a Blizzard 
6.8
감독
그렉 애러키
출연
쉐일린 우들리, 에바 그린, 크리스토퍼 멜로니, 실로 페르난데즈, 가보리 시디베
정보
미스터리, 드라마 | 프랑스, 미국 | 91 분 | 2014-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