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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비게이션 - [리뷰] 놀라지 말고 전방주시, 서행하세요

효준선생 2014. 7. 1. 07:30





   한 줄 소감 : 야물딱스럽게 찍은 초여름에 잘 어울리는 공포물
  





디지털 치매라는 말이 있다. 예전 같으면 오로지 자신의 감각에 의존해 기억하고 그걸 꺼내쓰곤 했지만 이제는 단말기에서 제공되는 디지털 정보를 통해 힘들게 기억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문명의 이기라는 컴퓨터의 활용은 이렇게 인간을 편하게는 만들었지만 거기에 따르는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다. 곰곰이 생각해서 추리하고 해결책을 도출해가기 보다 외부에서 전해주는 간략한 정보에 자신의 행동을 맡기기까지 하기 일쑤다.





영화 내비게이션은 세 명의 대학선후배가 단풍 놀이를 갔다가 겪게 되는 끔찍한 사연을 담고 있는데 제목에 나타난 내비게이션이 인물 이상의 역할을 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 도입부는 흔한 청춘 영화의 그것과 흡사하다. 신촌에서 학교를 다니며 젊음을 만끽하고 학교 근처 학사주점에서 여흥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 영화가 진짜 공포영화가 맞나 싶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다소 건조하게 그려지며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놀래키는 부분들이 등장하겠구나 싶었다.





아는 형의 차를 몰래 끌고 나온 그들, 신나게 내장산으로 단풍구경을 가는 도중에 그들은 교통사고가 나서 거리에 널부러진 차량을 보게 되고 한쪽 구석에 내동댕이쳐진 주인 잃은 내비게이션을 슬쩍한다. 청춘 드라마가 공포영화로 둔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다소 길었지만 이렇게 기계 문명에 혼을 빼앗긴 청춘들의 고난은 바로 시작된다.





그 단초는 내비게이션을 설치하려다 기계에 손을 찔려 피를 보인 여학생, 단순한 사고로 무심결에 넘기고 말았지만 그게 어떤 후과를 불러오는지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내장산에 도착한 그들을 옭아매는 일들이 하나 둘 씩 이어지고 어느새 밤, 낯선 곳에 밤에 찾아오면 제 아무리 담이 큰 사람들도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마련이고 친절하게도 방향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의 목소리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밀폐된 공간에 갇히면 외부로부터의 정보에 쉽게 따르곤 한다. 내비게이션도 마찬가지다. 예전 같았으면 지도를 펴놓고 고민을 한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그곳 주민들에게 길을 물었을 것을 너무나도 쉽게 내비게이션에 의존하고 만다. 그것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이 영화에서 내비게이션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이기(利器)가 아니라 흉기(凶器)로 돌변해야 하는 당위성 같은 건 별로 없다. 공포영화에서 당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싸가지 없음이나 야박함, 지나친 잘난 척 이런 것도 없었다. 그저 대학생 영화제에 출품할 꿈에 무르익어 아는 형의 차를 몰고 경치 좋은 곳을 찾아온 것 뿐이다.





이 영화의 대부분의 공포는 밤에 이뤄진다. 낯선 공간에 갇혀 버린 그들이 겪어 내야 하는, 공포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폐교, 외딴 집, 공동묘지 주변들이 등장하지만 가장 무서웠던 건 비포장 도로였다. 아무리 운전을 해도 방금 그 곳이라고 할 때의 공포감은 운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마치 끝없는 롤러코스터에 올라 탄 기분일 것이다. 이 부분에선 관객들도 잔뜩 긴장해야 할 것 같다. 



고생많이 한 김준호 배우, 신병을 앓고 있다는 그가 빨리 쾌유하길 바란다.


이 영화는 만든 형식에서도 주목할 점이 있다. 파운드 풋티지 영상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시작부터 한 남학생이 큰 맘 먹고 산 캠코더가 마치 연출자의 카메라를 대신하는 방식이다. 파운드 풋티지 영상을 강조한 것은 이 영화의 진행이 마치 캠코더에 찍힌 화면을 보여주는 것처럼 연출했기 때문인데 영화가 끝나고 생각해보니 그것조차 공포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이 영화를 감독이 이런 영화를 보여주겠다며 일반적인 영상으로 틀어 보여주는 것과 비교해, 등장인물 중 한 명이 들고 있는 캠코더와 외부의 폐쇄회로 화면, 그리고 차량 안에 있는 블랙박스 화면을 통해 보인 장면들이 현재가 아닌 이미 과거의 것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은가. 엔딩에 등장한 교통사고가 난 차량 한대가 주는 공포감을 이해한 사람이라면 심리적 부담감이 상당하다. 한정된 로케이션과 캐스팅으로 요령껏 찍어낸 아이디어 좋은 호러물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내비게이션 (2014)

7.5
감독
장권호
출연
황보라, 탁트인, 김준호
정보
공포, 스릴러 | 한국 | 82 분 | 2014-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