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파가니니 :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 [리뷰] 귀가 열리고 가슴이 뛰는 절주(節奏)

효준선생 2014. 4. 15. 07:33






   한 줄 소감 :  그는 비운했지만 나는 귀가 행복해지는 두 시간을 보냈다
 





영화는 진즉에 끝이 났고 엔딩 타이틀이 올라갔지만 자리에서 쉽사리 일어나기 싫을 때가 있다. 영화가 남긴 여운이 길어서다. 특히 전편을 아울렀던 선율이 극장 안에 진득하니 남아, 맴돌고 있음을 느낄 때라면 그냥 앉아 정적까지 기다리는 것도 좋다.





영화 파가니니 :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가 그런 류의 감흥을 선사해주었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작곡가까지 연계할 음악적 소양은 부족해도 귀가 더께가 앉은 것처럼,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선율에 전율을 느낄 수는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자꾸 겹쳐 생각나는 것들 중엔 과연 파가니니가 활동했던 시절에도 매니저나 열혈 매니아, 그리고 음악 전문 기자들이 존재했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소위 고전음악의 주인공을 다루면서도 마치 요즘 뜬다는 아이돌 뮤지션을 다룬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런던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공연은 좀 빠르게 설정된 클라이맥스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쉽지 않게 무대에 오른 파가니니의 귀에 익은 바이올린 협주가 이어지고 그가 연모해 마지않았던 샬롯의 아리아가 울려 퍼질때쯤 음악은 인간이 만든 최상의 문화적 카타르시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컨텐츠들이 과다 공급되어 귀가 닳고 닳았을텐데도 이런 클래식 넘버에 기분을 뺏길 수 있다는 건 아마 그 당시 청중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당연히 그의 음악은 악마에게 재능을 산 탓이라는 일부의 저주도 그의 음악이 주는 흡인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제목에 따라 붙은 부제인 악마는 파가니니 자신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천부적 음악적 재능에 비해 행복하지 많은 않았던 유년 시절을 넘기고 성인이 된 그, 도박에 온 정신을 탕진 한 채 슬럼프에 빠져 있던 그에게 우르바니의 출현은 지금으로 따지면 매니지먼트 회사의 제안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 뒤를 봐준다는 생각에 다시 힘을 낸 그, 런던의 오페라 하우스 상임 지휘자의 초대에 어렵사리 도착한 영국 생활, 그곳에서의 생활은 스타 뮤지션의 일상과 사탄의 도래를 성토하는 군중들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그의 바이올린이 결코 허장성세가 아님을 확인한 뒤 찾아온 결정적 실책은 결코 음악만 잘한다고 모든 것이 순탄하지 많은 않을 것이라는 경구(警句)를 남긴다. 즉, 악마는 그가 아닌 그의 재능을 탐낸 주변 인물의 마음안에 자리한 무엇일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선 파가니니라는 음악가와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밀고 당기는 설정도 흥미롭다. 그가 제아무리 천재적 바이올리니스트라 해도 무조건 성공가도만 달린 것이 아닌 결핍의 아이콘이었으며 그걸 해소하기 위해 필요했던 누군가의 진정한 위로와 격려가 있을 때와 사라진 때를 잘 비교하며 긴장과 이완을 거듭하는 장면들도 놓칠 수 없는 부분들이다. 존 왓슨과 그의 딸 샬롯이 그에게 희망을 주었다면 우르바니와 신문 기자, 그리고 그가 가는 곳마다 나와서 시위대를 이끌던 여자는 또 다른 측면에서 그를 시험대에 오르게 한 군상들이다.





이 영화를 통해 파가니니 이상으로 주목받아야 할 사람은 과거의 인물이 아닌 바로 데이빗 가렛이라는 현존하는 바이올리니스트다. 독일 출신의 그는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명망가들을 사사한 바 있지만 그 역시도 파가니니처럼 한때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이 영화 기획 단계에서부터 깊이 관여한 그는 연기자로서는 초보이지만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다는 파가니니의 대표곡들을 마치 자신의 곡처럼 실제 연주하는 모습을 보이며 극의 몰입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외모적으로도 무척 흡사하다 하니 이 영화 타이틀 롤은 그에겐 맞춤복 같다. 그가 연주한 바 있는 파가니니의 곡들은 이미 영상으로 올라와 있으니 영화와 함께 비교해서 봐도 좋을 것 같다. 





알려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음악시간에 죽어라고 외웠던 음악 사조와 대표적 작곡가의 이름들이 파편처럼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걸 떠올린다면 이 영화를 보며 다시 한 음악가의 이름과 작품, 그리고 그가 품고 살았던 일생의 단편을 엿보며 기억에 담아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은 이미 많이 흘렀고 기행을 일삼았던 어느 인물의 이야기가 멋진 음악과 함께 잘 버무려진 이 영화, 음악 때문이라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2014)

Paganini: The Devil's Violinist 
9.7
감독
버나드 로즈
출연
데이비드 가렛, 야레드 해리스, 크리스찬 맥케이, 베로니카 페레스, 헬무트 베르거
정보
뮤지컬 | 독일, 이탈리아 | 118 분 | 2014-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