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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리뷰] 믿고 의지할 사람, 있나요?

효준선생 2014. 2. 21. 07:30






    한 줄 소감 : 이분법 논리에 사로잡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에 딱 두 종류의 동물만 산다고 가정을 하자. 하나는 곰이고 다른 하나는 쥐다. 그들은 지상과 지하로 나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 각자 잘 살고 있다. 맨홀 뚜껑이 두 공간을 이어주는 거의 유일한 통로지만 그곳으로 드나들지 않는 다는 게 불문율이다. 자급자족도 가능해 보였다. 크게 욕심내지 않는 삶, 거리엔 인적도 많지 않지만 나름 평화롭게 사는 것으로 보였다.





영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우선 수채화를 방불케 하는 정감어린 톤의 그림과 아이들이 보는 만화영화에서 다루기 힘든 공존이라는 주제로 크게 부담없이 볼 수 있는 프랑스 애니메이션이다. 무엇보다 화려한 원색으로 범벅을 해놓은 헐리웃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여백을 많이 남게 두고 마치 종이를 휘리릭 넘기는 것 같은 캐릭터의 움직임이 독특한 이 영화는 조그만 봐도 정감이 어린다.





각자의 생활권역에서 대충 살면 그만이었을 이 두 공간과 이 두 생명체가 서로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곰은 쥐를 잡아 먹을 수도 있는 절대적 강자다. 상대적으로 좋은 생활여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곰들이라고 모두 부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네스트는 이른바 독거노인에 가깝다. 악기를 연주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고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지만 늘 경찰에 의해 쫒겨나는 신세다. 숲 속 작은 집에서 혼자 기거하며 가끔은 외로움에 어쩔 줄 몰라한다.





지하공간에 사는 쥐들에게 삶이란 제한적이다. 햇빛을 보기 어렵고 먹는 것도 부실하지만 나름의 살아가는 법칙이 있다. 그중에서도 치과의사가 되는 건 그들 세상에선 가난에서 부유로 가는 사다리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인 셀레스틴도 그 수순을 선택한다. 하지만 모두가 치과의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닌지라 진로의 갈등은 상존한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실습하는 과정에서 곰의 이빨을 많이 구해올 수록 유능한 의사가 된다는 설정인데, 쉽지 않은 미션인 셈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생활영역에서 가급적 부대끼지 않고 살았던 두 종족의 교집합은 외로운 곰 어네스트와 귀요미 쥐 셀레스틴의 동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우연히 찾아간 다른 곰의 집에서 겨우 탈출한 셀레스틴과 쓰레기 통에서 그를 발견한 어네스트는 사탕가게 집 습격사건으로 경찰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고 숲 속에 있는 어네스트의 집에서 함께 머물게 된다.





어색한 동거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따로 또 같이의 하모니는 마치 친구나 부부와 같은 호흡을 보여준다. 경찰에 의해 잡혀가는 순간에도 기지를 발휘하는 영리함과 상대가 숨은 곳을 말하지 않는 우직함은 처형을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들이 결정적으로 자신들의 삶을 결정짓는 요소는 상대방에 대한 측은지심이다. 화재 속에서도 자신이 아닌 타인을 구할 수 있는 용기라든지, 억지스러운 법망 안에 자신들을 집어 넣기 위해 애를 쓰는 공권력을 도리어 인본주의 사상으로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힘은 결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이 영화는 상대를 제압함으로써 공멸로 가는 길이 아닌 서로를 포용하고 인정하며 같이 더불어 사는 길을 모색하는 이른바 캠페인 무비다. 그림도 걸맞게 따뜻하고 목소리 배우들의 음성도 날카롭게 자극하지 않는다. 눈 덮인 시골길을 걸으며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한 친구의 속삭임 같은 이야기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우린 쥐인가 곰인가. 우리편이 아니면 무조건 배척만 하지 않았던가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2014)

Ernest & Celestine 
9.1
감독
뱅상 파타르, 스테판 오비에, 벵자맹 레네
출연
장광, 박지윤, 김옥경, 랑베르 윌슨, 폴린 브루너
정보
애니메이션, 코미디, 드라마 | 프랑스 | 79 분 | 2014-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