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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야 - [리뷰] 잊힌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

효준선생 2013. 12. 18. 07:09

 

 

 

 

 

 

    한 줄 소감 :  대한민국 현대사의 감춰진 슬픈 자화상, 양지로 나오다

 

 

 

 

 

1951년 한국전쟁이 한창일 무렵 경상남도 오지인 거창에 빨치산 대원들이 잠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경찰과 군인들은 이곳에 병력을 집결시킨다. 그리고는 이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학살극을 감행한다. 그렇게 3일 동안 죽은 사람이 700여명, 거의 온 동네 주민이 몰살당한 그 일을 거창사건이라 부른다.

 

 

 


견벽청야라는 말이 있다. 적을 섬멸하기 위해선 벽을 쌓는 것 이상으로 그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한 톨의 쌀이라도 들어가서는 안된다며 주변을 홤폐화 시키는 군사작전을 일컫는다. 영화 청야엔 이런 의미가 담겨져 있다. 사실 영화에 대한 소개를 접하기 전엔 거창사건이라는 단어조차 알지 못했다. 제주나 노근리에서 발생했던 유사한 일들이 사회 표면에 드러나며 언론의 관심도 받고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물질적 보상도 이뤄졌던 것에 비하면 거창사건은 상대적으로 왜 감춰져야했는지 그 점이 의아했다.

 

 

 


당시로서는 사방이 산에 둘러쌓여 마치 오지와도 같았던 그곳이 하루 아침에 지옥으로 변한 이유는 빨치산 척결이라는, 당시 위정자들의 판단이 한 몫 했겠지만 정작 빨치산도 아닌 양민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더 무서운 일은 연좌제라 하여 거창군 신원리 출신이라면 그 이후에도 한동안 의심의 눈초리를 면치 못했다고 한다. 가해자는 떵떵거리며 권력을 누리는 동안 피해자는 반세기 넘게 숨을 죽이고 살아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자 하는 프로듀서와 전직 군인이자 지금은 치매에 걸린 한 노인, 그리고 그의 손녀가 거창을 찾으면서 시작한다. 그들이 관공서와 주민들을 만나며 그 당시 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발생했던 끔찍한 일들을 찾아보는 동안 벌써 60여년이나 지났건만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엔 그 당시 가해자의 편에 섰던 한 퇴역 군인의 아픈 기억이 있다.

 

 

 


낡아빠진 흑백 사진 안에는 어린 소녀가 있다. 웃는 듯, 우는 듯한 표정의 소녀가 바로 그 군인이 살려낸 상흔의 증인인 셈이다. 일제의 압박에서 간신히 벗어났고 북한 인민군의 총성이 들리지 않을때 쯤 그들은 아마 평화가 찾아왔겠거니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기네 국군의 총탄 앞에 쓰러져야 하다니, 어쩌면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을 앞에는 쓰러진 위령비가 여전히 그 모습대로다. 수습을 끝내고 세워둔 위령비 조차 이어 들어선 군사독재 세력에 의해 땅에 파묻혔던 것을 끄집어 낸 것이다. 자신들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사실을 은폐하고 이곳을 은둔의, 망각의 땅으로 만들고자 했던 그들. 당연히 그 곳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잊힌 역사는 반드시 다시 반복된다는 만고의 진리가 아니고서도 이런 일들이 또 어디선가 숨죽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정의인가를 따지기 전에, 여전히 제대로된 반성조차 하지 않는 현실이 영화를 통해 물음으로 다가왔다.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이 영화는 세미다큐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극 영화지만, 당시의 참혹한 모습들은 애니메이션으로 소화할 수 밖에 없었다. 실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잔혹할 정도의 처결장면들과 시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까마귀떼들의 모습이 공포스러웠다. 시간이 이만큼이나 흐르고 사람들은 점차 잊고 사는 듯 해보였다. 당사자들이 작고하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 중년이 된 그 곳 사람들. 배우들이야 局外人의 신분으로 와서 촬영만 하고 가면 그 뿐이겠지만 이 영화를 계기로 대한민국 현대사의 얼룩진 그림자 또한 제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감추거나 외면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연출을 맡은 김재수 감독이 그곳에서 직접 살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영화화되는 우연성에만 기댈 것이 아닌 본격적인 탐사와 기획을 통해 연작 프로젝트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이런 일이 연작 프로젝트가 될 정도라는 사실이 참으로 아프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청야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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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재수
출연
안미나, 김기방, 백승현, 명계남
정보
드라마 | 한국 | 83 분 | 2013-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