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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언어의 정원 - [리뷰] 비가 오면 생각이 날 듯, 추억의 그대

효준선생 2013. 8. 6. 02:00

 

 

 

 

 

    한 줄 소감 : 물과 빛, 그리고 비가 이토록 아름다운 오브제가 될 수 있다니 경이롭다

 

 

 

 

Key wors // 향수, 성장, 장마, 풋사랑, 구두, 고전문학, [신주쿠 공원에서 음주할 수 없음]

 

 

 

늘 급기야 올해 장마가 끝이 났다고 했다. 기록상 가장 길었던 장마주기라 했다. 다행히 비를 피해다녀서인지 장마라고 해도 큰 인상은 받지 못했지만 가버리는 장마가 아쉬웠던 마당에 영화를 한 편 보고 나오자 언제 소나기라도 내렸는지 바닥이 흥건하고 사람들은 우산을 하나 들고 총총 걸음을 옮긴다. 내 마음을 알아챈 모양이다. 아침나절엔 습하고 찌는 듯했지만 한결 상쾌해졌다. 이렇게 비는 내가 직접 맞지 않는다면야 주위를 씻어주는 고마운 존재기도 하다.

 

 

 


영화 언어의 정원엔 비가 주요한 장치로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비는 딜레이의 의미다. 한창 자라는 남자 나이 열 다섯,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여자 나이 스물 일곱, 여자는 학교 선생이고 남자는 그 학교 학생이다. 비를 좋아라는 남자아이는 학교 수업을 한 시간 빼 먹는 한이 있더라도 공원에서 스케치를 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여자, 학교에 갈 시간임에도 그녀는 이 공원에 와서 맥주와 초코렛을 먹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영화는 연상녀와 연하남의 사랑 이야기인가 싶지만 다보고 나니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속내를 다 털어놓지 못하고 사는 현대 일본인들의 자화상이다. 타인에 의해 자신의 속마음을 읽히고도 제대로 예, 아니오를 말하지 못하는 마음 씀씀이. 설사 대중에게 따돌림을 당하고도 변명조차 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낮춰버림으로써 피하는 그들에게 성장과 정체의 교차점에 선 두 사람을 만나게 함으로써 답을 구하려고 한다.

 

 

 


구두를 만드는 걸 업으로 삼고자 하는, 나이보다 성숙한 마인드의 소년의 일상은 한마디로 대차다. 요즘 아이처럼 보이지 않는다. 방학엔 아르바이트를 해서 재료비를 구한다. 물론 손놀림도 좋다. 하지만 그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어른이 없다. 부모님은 부재하고 형마저 따로 나가서 산다.

 

 

 


학교에서의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그만두고 고향으로 가려는 여선생, 그에게 비는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좋은 핑계가 되었고, 비 내리는 공원에서의 소요(逍遙)는 숨 쉴 틈을 만들어 준 셈이다. 그녀 역시 혼자 산다. 아무도 그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사람이 없다.

 

 

 


소년과 여선생의 만남은 구두와 요리 이야기에서 멈춘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 단가(短歌)가 있다. 한 마디 남짓한 짧은 싯구, 두 사람이 한 문장씩 주고받으면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일본 하이쿠의 확장판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단가는 비와 만남, 그리고 헤어짐을 이야기한다.

 

 

 


옷깃만 스쳐도 엄청난 인연이라고 하거늘, 수많은 인연들이 하루에도 여러차례 만들어졌다가 사라진다. 그 인연들을 모두 잡아놓지 않았다고 후회할 필요는 없다. 오늘이 가면 내일 또 다른 인연과 만나면 그만이다. 연출을 맡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40여분이라는 짧은 애니메이션 한 편을 통해 짧은 인연이 가져다 주는 노스탤지어를 충분히 확보했다. 초록과 보라색으로 어우러진 색감과 비가 내리는 장면에서 입체효과를 느낄 수 있게끔 꾸며 놓은 미술적 감각들이 탁월하다. 누군가 아무것도 아닌 말이라도 걸게 되면 따뜻하게 반응을 해봐야겠다. 누가 아나 그게 나의 인연인지를.   (양진석의씨네필 소울)

 

 

 

 

 


언어의 정원 (2013)

The Garden of Words 
9
감독
신카이 마코토
출연
이리노 미유, 하나자와 카나, 히라노 후미, 마에다 타케시, 테라사키 유카
정보
애니메이션, 로맨스/멜로 | 일본 | 46 분 | 2013-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