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신세계 - 독하게 살아남는 법을 말하다

효준선생 2013. 2. 7. 07:30

 

 

 

 

 

 

  한 줄 소감 :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서로를 갉아먹는 비장미가 물씬

 

 

 

 

 

 

 

기(將棋)에서 상대가 치명적 한 수를 불렀을 때 빠져나가지 못하는 경우 외통수라 한다. 살다보면 이런 경우에 처할 때가 있다. 간혹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버티기에 들어가면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하고, 오히려 전화위복되기도 한다. 영화 신세계는 자신의 능력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한 남자와 최고가 되고 싶어하는 남자들 사이에서의 살아남기 전략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모종의 직업에서 개인은 조직을 위해 희생당하기도 한다. 그것이 설사 단 하나뿐인 목숨이라고 해도, 그게 명예가 되었든 개죽음이 되었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희생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이 영화에선 경찰조직과 폭력조직이 맞선다. 한 편은 잡기 위해, 다른 한 편은 잡히지 않기 위해, 하지만 이런 도식도 이 영화에선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잡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수갑채워 감옥에 처넣으면 그만일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마치 비밀이라도 되는 양 군다. 그리고 그 설계와 작업을 하는 인원은 극소수다. 어쨌든 실패하는 경우 설사 경찰이라도 목숨을 담보하지 못한다. 그게 이른바 작전명 신세계다.

 

 


딱 보기에 조폭들이 자신들을 햇볕에 노출시켰음을 감지할 수 있는 골드문 그룹 회장이 사고를 위장한 교통사고로 죽자 그 자리를 노리는 2인자들의 암투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물론 다들 깡패들(혹은 출신)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승복하지 못한다. 일찌감치 여러 조직들이 세를 불리기 위해 물리적으로 뭉쳐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오야붕”이 있었을 때는 “꼬붕”들은 그나마 복종하는 시늉이라도 냈지만 머리가 사라지자 여러 개의 꼬리들이 서로 자기 지분을 내세워 설치는 모양새다. 그런 연유로 넘버2, 넘버3, 심지어 넘버4까지 서로에게 위협적으로 군다.


이 영화가 무섭다는 이유는 단순히 폭력이 난무하고 몽둥이가 날아다녀서가 아니다. 그저 자리 하나뿐인데 자신의 길을 가로 막는 자가 얼쩡거린다면 어제까지만 해도 한솥밥을 먹었던 조직원들끼리도 칼을 겨누고 목을 따버리는데 있다. 한마디로 믿음은 약으로 쓰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그 안에 경찰 출신 “빨대”가 암약 중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신분 노출에 대한 조바심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파되고 창고 씬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이른바 신세계를 총설계한 자, 강과장은 왜 이런 일을 꾸몄을까 공명심이라고봐야 할까 아니면 과거에 어떤 일에 대한 복수심일까? 한때는 자신의 부하였던 자들의 비참한 운명을 알게 되면서도 결코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조폭 두목와 다른 게 뭐가 있나 싶었다. (강과장 최민식 분)


경찰 출신이면서 깡패 생활 어언 8년차 어느덧 자신의 모양새가 경찰이 아닌 깡패와 닮아간다는 생각에 힘이 든다. 그만두고 싶지만 퇴로가 없다. 신분이 노출되기라도 한다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차라리 자신을 동생이라 불러주는 화교 출신 깡패에게서 더 연민을 느낀다. 그냥 힘들다는 생각뿐이다. 추호도 조직에서 1인자가 될 생각은 없다. (이자성 이정재 분)


조직에 들어와 이제 겨우 넘버 3가 되었다. 크게 바라지는 않지만 기왕 이 바닥에 발을 담궜으니 회장도 되어 보는 거 나쁘지도 않겠건만, 노리는 자가 너무 많다. 그렇다고 두렵진 않다. 깡다구는 세상 누구에게도 뒤질게 없다. 인생은 한 방이다. (정청 황정민 분) 

 


 

 

이 영화는 3인 캐릭터 영화다. 총설계자와 자신을 감추고 사는 인물, 그리고 1인자가 되고픈 남자. 이들의 밸런스는 대단히 조율이 잘된 느낌이다. 서로 두각을 내세우기보다 최소한 한 명은 뒤로 빠지며 모나지 않게 이끌고 나간다. 기존의 갱스터 영화들이 과도한 몸쓰기와 폭파 씬등으로 시각적 충격을 주는데 몰두 했다면 이 영화는 서로를 꺾기 위한 혹은 자신을 감추기 위한 노력을 총기나 주먹등 몸이 아닌 머리와 심장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바로 이어 나올 뒷이야기를 추측하지 못하게 만들고 주인공과 조연들은 마치 길거리 오락기계의 두더지인형처럼 서로 머리를 들이 밀지만 얻어맞고 주저앉을 뿐이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는 건 모든 걸 움켜쥘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단서를 감출 수 있을 뿐이다. 돈? 명예? 이런 수준이 아닌 자신의 목숨이라면 기를 쓰고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기운 센 순서대로 1인자가 될 수 있다면 그건 아주 재미없는 스토리다. 하지만 누군가가 타의에 의해 1인자의 자리에 올랐다면 그건 아주 재미있는 스토리다. 그 결정적 계기와 단서가 되는 순간, 이 영화는 폭발한다. 영민한 선택이다.     

 

 

 

영화 신세계의 두 가지 화두를 집고 넘어가자. 바로 중국과 담배다. 예전 같으면 일본 야쿠자가 했을 이야기들이 이번 영화에선 조선족 조폭들로 치환했다. 한국어가 가능했고, 어느 정도 현실적이라고 판단하고 적용시킨 모양이다. 둘째 각각의 인물들은 지나칠 정도로 담배에 올인한다. 통쾌해서 한 대, 우울해서 한 대, 그리고 마지막 가는 길에 또 한대. 아마도 담배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는 지 모른다. 허옇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사이로 영화 신세계는 그리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시작은 하나였다. 바로 새로운 세상에 가보고 싶어 한 자들의 이야기. 영화를 다보고 나면 마치 동물들의 아수라장처럼 변해버린 인간들의 이전투구에, 저렇게 해서 단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것인데 인간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기에 좀더 치열하게 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당연하게도 배우들 역시 그러했고. 갱스터 느와르 영화지만 템포는 생각보다 빠르지 않다. 분명히 인구에 회자가 될 엘리베이트 안 칼부림처럼 화려한 액션 시퀀스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갉아먹을 수 있는지를 음미하면서 본다면 이 영화의 뜨거운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민식, 황정민, 그리고 이정재는 연말 시상식에서나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티켓파워들이지만 그들 못지않은 역할을 해낸 박성웅과 수많은 조연, 단역들의 형형한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장르 갱스터 느와르

  제작 사나이픽쳐스

  제공배급 NEW

  홍보 마케팅 앤드크레딧/웹스프레드 

 

 


신세계 (2013)

8.5
감독
박훈정
출연
이정재, 최민식, 황정민, 박성웅, 송지효
정보
범죄, 드라마 | 한국 | 134 분 | 2013-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