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더 헌트 - 나를 보는 시선이 살벌하게 느껴질때 할 수 있는 몇 가지

효준선생 2013. 1. 9. 07:30

 

 

 

 

 

  한 줄 소감 : 할 수 있는 게 별로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게 공포다

 

 

 

 

 

지난해부터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북유럽 영화엔 서늘한 비수같은 느낌이 있다. 그건 그들 나라의 날씨, 기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선입견이 좀 있다. 도시의 번잡함 보다는 광야에 가까운 땅위에서 일상을 보내는 다는 건 공동체 구성원의 마인드에도 지대한 영향을 준다. 눈 앞의 이익을 좇기보다는 좀 넓은 그림을 그릴 줄 안다는 이야기다. 이들 나라의 영화에도 그런 맛을 풍긴다. 짧은 에피소드의 연속이 아니라 틀 전체를 봐야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 최근 소개되는 몇 편의 북유럽의 영화들은 정서는 대단히 차분하면서도 폭발력을 내재한, 낯선 배우들이 주는 생경함 대신 왜 그동안 저런 배우들을 알지 못했나 싶은 무지함을 일깨워 줄만한 연기력.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엄습하는,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영화 자체의 힘. 이 모든 것들은 영화 더 헌트와 관련이 있다.


유치원에 다니는 소녀 클라라의 이야기를 해보자. 그녀는 트라우마가 좀 있다. 혼자서는 줄이 그어진 바닥을 밟지 못한다. 누군가의 조력이 필요하다. 유치원 교사인 루카스는 소녀 아빠의 친구이자 그런 클라라에겐 큰 힘이 되어준다. 그런데 소녀가 무슨 이유에선지 루카스의 성기를 보았다는 말을 유치원 원장에게 하는 바람에 일이 커지고 말았다. 한국에서도 최근 사회문제가 된 바 있는 유아 성추행과 그 끈이 닿아있다. 소녀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발언으로 루카스는 곤경에 빠진다.


그런데 소녀는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걸까? 그리고 소녀의 진술에 대한 진위를 가리기 보다 성인인 루카스에게 가해지는 사회의 눈초리는 생각보다 왜 그토록 깊고 지독했던 것일까? 영화 도입부에서 몇몇의 남자아이들은 외설 사진을 들고 다니며 2차 성징이 시작한 또래 남자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행동을 아직은 어린 클라라와 공유하려고 한다. 그 역시 성추행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지만 클라라는 잘못하면 자기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다수인 “그들”이 아닌 그때까지 자신의 조력자였던 루카스에게 혐의를 씌운다. 소녀의 한마디는 의도적이라기 보다는 성추행을 당했을 때 생기는 일종의 정신적 충격, 그리고 무의식적 방어기제로 보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동이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추행이 성인으로 옮겨가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해결하기 보다, 멀쩡한 한 남자에게 가해진 공동체의 불편한 시선이 얼마나 공고하게 그를 괴롭히는지에 더욱 깊은 관심을 보인다. 다시말해 루카스의 죄명이 “유아 성추행”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었다. 무엇이든 “그는 파렴치범”이라는 전제하에 그들은 혼자인 루카스를 괴롭히는데 동조한다. 그리고 그 동조화는 동심원을 그리며 커지고 그 안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았을 때의 불안감 역시 표현된다. 예를 들어 루카스가 다니는 식료품점 직원들은 루카스와 아무런 처벌적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무지막지하게 루카스를 두드려 팬다. 그리고 옆의 직원까지 합세한다. 루카스는 그렇게 사회적 “왕따”를 당한 셈이다.


이 영화는 비단 루카스가 살고 있는 덴마크 어느 시골마을에서의 일만으로 국한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없다. 도시인들에게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같은 학교와 직장에서 근무하면서도 배제당하는 한 사람에 대한 직간접적 처벌 의지는 당사자 본인 의지와 상관없다. 저항이나 복수는 별 의미가 없다. 이 영화에서 루카스의 행동은 많이 답답하다. 그는 자신에게 생각 이상으로 가해지는 폭력 앞에서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는다. 무력 충돌이 발생해도 그는 그 쉬운 고함 소리마저 내는데 인색하다. 이 영화의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성당 장면은 그가 휘두른 몇 번의 주먹질 보다 그가 흘리는 진한 눈물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파국을 끝낸 건 사건의 단초가 된 클라라의 아버지를 통해서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만약 이 영화가 헐리웃에서 만들어졌다면  남자는 자신을 향해 궁지로 몰아넣은 그들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들이대거나 영화 제목처럼 “인간 사냥”의 총질을 했을 지도 모른다. 유일하게 그의 편으로 나오는 아들이 성인이 되어 총기사용 허가 면허증을 발급받는 다는 설정도 그래서 더욱 긴장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클리세한 선택은 하지 않았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총격에 움찔 놀라는 주인공을 포커스에 넣어 놓는 것으로 관객들에게 마지막 비수를 휘둘렀다. 놀랍고도 무서운 장면이다.


스릴러 영화라는 말은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다. 귀신이 나오고 피칠갑이 되도록 서로 죽고 죽이는 장면도 없다. 대신 마치 먹이를 서로 뜯어 먹겠다고 달려드는 여러 마리의 하이에나 떼들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무리의 表裏가 가증스러울 뿐이다. 영화 제목 더 헌트가 주는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볼 만하다.   

 

 


작년 칸의 선택을 받은 남자 매즈 미켈슨(루카스)은 지난 주 개봉한 또 하나의 인상적인 덴마크 영화 로얄 어페

에서 독일 의사 요한을 연기한 바로 그 배우다. 나름 세파에 시달린 듯,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외모와 불안과 음습함을 동시에 표출해 내는 의뭉스런 연기는 최고다.  

 

 

 

    장르 스릴러 드라마

    수입배급 엣나인필름 / 씨너스 엔터테인먼트   

 

 

 

 

 

 

 


더 헌트 (2013)

The Hunt 
9.5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출연
매즈 미켈슨, 토마스 보 라센, 아니카 베데르코프, 라세 포겔스트룀, 수세 볼드
정보
드라마 | 덴마크 | 111 분 | 2013-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