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 - 트라우마적 복수와 허세적 자기자랑이 제대로 붙었다

효준선생 2012. 11. 9. 07:00

 

 

 

 

 

    한 줄 소감 : 시작도 끝도 창대한 액션 지존무상 + 기상천외한 반전, 그리고 맥거핀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 만큼 노골적인 제목을 단 영화가 또 있었나싶다. 이 영화를 검색하려다 막연히 나는 살인범이다라고 입력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내가” 와 “나는”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그리고 영화 속에서 이 차이점은 드러날까 내가 살인범이다는 말엔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 나는 살인범이다 라는 말엔 살인범에 방점이 찍혀있다. 즉, 살인범이 다수인 경우 자신을 강조하고 싶을때 나는 살인범이다 가 아닌 내가 살인범이다로 해야 맞는 것이고, 영화는 이미 제목에서 힌트를 던져준 셈이다. 말장난 같지만 묘한 뉘앙스의 차이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키 포인트가 된다.


영화는 술집을 겸한 허름한 식당에서 시작한다. 느닷없는 폭력과 추격씬, 날 것의 냄새가 풀풀나고 카메라는 스스로가 범인 혹은 범인을 쫒는 남자의 시선으로 따라 붙는 긴박감을 선사한다. 그리는 이내 이미 선전문구를 통해 잘 알려진대로 공소시효를 보낸 한 젊은 남성이 자신의 지난 과오를 씻기 위해 범죄행각을 낱낱이 고백한 책을 펴내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스스로가 내가 살인범이다라고 밝히며 세상의 이목을 끄는 장면들과 거기에 맞붙어 흥분하는 세상사람들의 이야기가 상당한 분량으로 할애되었다. 나름 공포감도 있고, 정말 전직(?) 살인범쯤 되려면 저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기분도 선사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맥거핀이라는 건, 이 영화가 고의로 배치해 놓는 기가 막힌 장치들이다. 영화를 다보면 알겠지만 자신이 살인범이었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생각외의 행동을 연이어 하는 이두석의 비주얼을 보면, 과연 저 얼굴의 15년 전이 연상이 안된다. 일반 형사사범의 공소시효가 15년이라면 저 사람은 10대때 마지막 살인을 했다는 전제인데 말이 되나? 그런 의문도 잠시 팬클럽이 결성될 정도로 스타덤에 오른 이두석의 매력은 솔직히 혹할 만 했다. 쌍거풀 없는 눈, 그리고 얇은 입꼬리가 치켜 올라갈때의 비열함은 충분히 그런 의심을 잠식시킬만 했다.


한 남자가 더 있다. 노총각 형사 최형구, 유독 이두석을 잡아 족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전직 자칭 살인범과 방송에서 맞짱 토론도 마다 않고 유가족들이 목숨걸고 잡아들인 이두석을 마찬가지로 목숨걸고 빼내오는 이상한 행보를 한다. 그는 실적을 쌓기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아님 희생당한 10명의 부녀자중에 아는 사람이라도 들어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의 흐름은 종반 이후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하 갈래로 접어든다. 세상엔 적지 않은 사이코 패스나 소시오패스들이 우리들과 숨을 공유하고 있다. 괴롭히는 것으로 쾌락을 삼고 자신의 과오나 행위가 타인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수반하는 지에 대해 짐짓 모른 척한다. 그 대신 허세도 대단하다.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면에는 목적물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나 잠재한 폭력의 발로가 있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내보이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특히 연쇄살인이나 연쇄방화범의 경우, 순간적인 일회성 범행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을때의 사회의 반응을 보며 소위 즐긴다는 느낌이 좋아서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범죄는 선과 악의 판단기준에서 벗어나 누군가 자신을 주목한다는 사실에 더욱 흥분한다. 만약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의 범죄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다면 역설적으로 그들의 범죄행위는 중단될 수도 있단 얘기다. 이 영화 역시 이런 범주 안에 있다. 내가 살인범이다라고 주장하며 세상에 자신의 가면을 벗어던질 만큼, 세상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하필이면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고통을 받는, 그래서 살인범의 대척점에 서있는 살아남은 자들과의 한판전은 이 영화에선 액션으로 갈무리하고 있다.


법만으로 이들의 감정을 무마하지 못한다는 건 이미 공소시효라는, 피해자의 유가족에겐 멍에와 같은 제도에서 이미 밝혀진 바 있다. 혹은 솜방망이 처벌하에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데, 죽인 사람은 세상에 나와 거들먹거리는 세태, 직접 나설 수 밖에 없는 부류들의 법을 앞선 감정들이 영화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액션 시퀀스들이 담겨 있다. 숨돌릴 틈도 없이 몰아치는 다양한 액션의 향연은 반전에 반전, 그리고 복선이 적절하게 섞여들어 몰입도 최고치에 다다르게 만들었다. 이 영화를 보면 과연 공소시효라는 제도가 법의 한계라고 일컫는 수준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지 따져볼 계기가 될 듯 싶다. 만약 남의 일이 아니라면 말이다. 

 

 

 

 

 

 

 

 

 


내가 살인범이다 (2012)

9
감독
정병길
출연
정재영, 박시후, 정해균, 김영애, 최원영
정보
액션, 스릴러 | 한국 | 119 분 | 2012-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