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나쁜 피 - 당신 혈관을 타고 흐르는 폭력의 DNA

효준선생 2012. 11. 8. 00:03

 

 

 

 

 

 

   한 줄 소감 : 가장 나쁜 피는 폭력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인식아닐까

 

 

 

 

22살의 꿈 많은 처녀 인선, 전공인지 아니면 독학으로 배웠는지 스페인어를 곧잘 한다. 그녀는 곧 스페인으로 공부하러 갈 생각에 하루하루가 신난다. 그에겐 남자 친구가 있다. 군대갈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에게 잠자리를 집요하게 요구하듯, 그녀의 남자친구도 그녀에게 마찬가지로 접근한다. 그런데 그녀는 키스 이상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처녀성은 의미가 있다.


오래전 일이다. 19살 순박했던 처녀가 친구 집에 기숙했다가 친구의 오빠에게 강제로 성폭행을 당한다. 그리고 바로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는 아무도 몰래 점점 자라 엄마가 자신을 임신했던 나이가 되었고 그 엄마는 자식을 위해 제 몸뚱아리를 내어주는 암게처럼 스러질 날만 기다린다. 그동안 마음에 담고 살았던 비밀을 그제서야 딸에게 꺼내 놓는다. 하지만 그 말은 딸에게 동정이나 애수가 아닌 복수와 절망감으로 다가섰다.


남자는 시나리오를 긁적이며 혼자 산다. 결혼은 했다고 하지만 이미 도망간 지 오래된 아내와 딸 대신 아내의 소개로 왔다는 묘령의 아가씨와 동거에 들어간다. 남자 앞에 던져진 건 약간의 돈과 호기심이다.


영화 나쁜 피는 생각을 좀 많이 해야 하는 영화다. 표면적인 영상이나 대사말고 그 사이사이에 녹아있는 완충재를 잘 살펴야 할 것 같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무려 두 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이지만 시나리오를 쓴 감독은 이야기를 다 꺼내서 들려주지 못한 인상이고 두 번째는 머리엔 와 닿지만 가슴엔 와 닿지 않는 거친 연기 때문에 그렇다.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연기가 못하다는 말이 아니라 숨은그림찾기를 해도 부족할 만큼 이야기꺼리가 많다는 의미다.


우선 나쁜 피라는 제목을 보자. 22살의 딸은 자신의 출생은 강간한 아빠와 강간당한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의 정체성에 갑작스런 회의감이 든 처녀다. 엄마 말대로 성인이 된 이상, 그냥 모든 걸 묻고 자기 살길 찾아 스페인으로 가버리면 될테지만 딸은 몹시 흥분한 상태로 돌변한다. 따지고 보면 세상의 거의 모든 아이들은 부모의 성적충동에 의해 태어난다. 그것이 원한 관계이든 아니면 그렇지 않은 것이든 관계는 부모의 것이고 세상에 태어나게 수정이 되고 착상이 되고 성체가 되어 세상에 나온 이상, 그 모든 건 아이의 몫인 셈이다. 그렇다면 제목 나쁜 피는 그 딸의 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딸은 순결을 지키기 위해 남자친구의 요구도 뿌리쳤다. 그건 강간을 당한 엄마와는 정반대의 포지션이다. 남자 친구도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나중에 그녀는 모종의 계획 하에 자기 스스로 자신의 처녀성을 버린다. 이 또한 강간의 대척점에 있는 포지션이다. 이 부분에서 그녀의 결기는 인정하겠지만 그럴 필요가 과연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남자의 시선으로 옮겨가면서 구체화 된다.


영화는 엄마의 發話에서 시작해 딸의 복수행각, 그리고 생물학적 아버지의 천당과 지옥을 오고가는 행위를 통해 과연 나쁜 피는 어디서 어디로 흐르는지를 탐색하게 했다. 영화에선 유난히 피가 많이 등장한다. 자신의 방문을 연 아버지를 경계하면서 칼집이 아닌 칼날을 쥐는 바람에 피가 나고, 불특정 다수와 자학성 성관계를 맺으며, 내동댕이쳐진 혈흔이 묻은 휴지, 자신의 아버지임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더 이상의 연민도 모두 포기하며 자해를 하는 과정에서 흘린 피들. 이렇게 흘린 피들은 과연 감독이 말하는 나쁜 피의 범주에 들어가는 가?


그렇지 않다고 보았다. 오히려 나쁜 피의 소유자는 여성에 대해 힘의 논리로 언제든지 취할 수 있는 대상이라며 떠들고 다니는 부류들, 처녀와 하룻밤을 자고 그녀의 몸매를 친구에게 떠벌이는 걸 사내다움이라고 은연중 사고에 주입하는 사회 구성원의 가치관이 존재하는 한, 이런 “나쁜 피”는 영속할 수 밖에 없다. 영화 도입부 운전을 하면서 쉴 새 없이 욕설과 여성에 대한 정복욕구를 음담패설과 섞어 내놓는 두 명의 남자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한 여자의 자신의 엄마를 강간한 남자에 대한 복수극이 전부가 아니다. 힘없는 타인(그것이 여성이든 남성이든)을 자신의 욕구에 따라 꼼짝 못하게 만들 수 있음을 자랑하는 우리들에게 심각한 경종을 울리는 영화다. 그 안에서 부유하는 블랙 코미디 몇 개는 이 영화를 끔찍한 다큐 고발프로그램으로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였으며, 건넌방에서 낯선 사내들에게 몸을 주면서 일부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절망이 끝나면 희망이 오는 것이겠구나 라며 안심시키는 장면 후 등장하는 생각지도 못한 씁쓸한 반전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수 없는 폭력의 굴레안에서 간신히 버티며 살아가는 약자의 모습 그것을 연상케 했다. 


이 영화는 형사의 취조에서 시작해 취조로 끝을 낸다. 형사 앞에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용의자이자 공범이다. 그들이 언급하는 내용이 바로 이 영화의 영상이다. 하지만 끝까지 집중하지 않는다면 충격적 최후 반전은 최고조로 체감하기 어렵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한결같이 숫컷의 양태를 띠고 있다. 마지막 장면 영화의 키맨이 중간에 잠시 등장하는 부분에서 모종의 혐오감을 느꼈던 바, 예상은 맞았다.

 

 

 

 

 

 

 

 


나쁜 피 (2012)

Dirty Blood 
9.4
감독
강효진
출연
윤주, 임대일, 설지윤, 유영채
정보
범죄 | 한국 | 130 분 | 2012-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