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남영동 1985 - 그 고통의 신음소리가 헛된 것이 아님을...

효준선생 2012. 11. 6. 00:16

 

 

 

 

 

 

   한 줄 소감 : 외면하고 싶은 처절한 장면들이다. 그런데 실제였다. 이런데도 아무 느낌이 없나?

 

 

 

 

영화 남영동 1985를 보고 난 뒤 관객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바튼 기침이라도 하면 주위에 폐를 끼칠 것 같아 참고 참았던 억눌린 숨을 몰아쉬고 어깨를 늘어뜨린 채 100여분을 앉아 있던 그 자리에서 털고 일어서야 한다는 게 참으로 힘겹구나하는 걸 느끼게 된다. 겨우 영화 한편인데 왜 이토록 엄청난 감정의 이입이 가능했을까 우리완 상관없는 헐리웃의 어떤 이야기였다면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20여 년 전, 그 당시를 살아온 많은 이들에겐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임을 금방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1985년은 비유를 하자면 20년 넘게 억눌리고 숨 못 쉬고 할말 다 하지 못한 채 살아온 “아랫것”들의 분노가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하던 때였다. 결론부터 말해 “87”의 분위기는 신군부 들어 조금씩 점도를 높였고 그 한가운데 있던 시기가 바로 85년 무렵이었다. 이 영화는 故 김근태 의원의 이야기를 기초로 한다. 그 분에 대해 아는 사람도, 혹은 모르는 사람도 있다. 모르는 사람을 억지로 다잡아 놓고 알려줄 생각도 없지만 영화는 그의 일생 중 가장 치욕적인 며칠을 기록해두려는 의도가 아닌 일개 권력이 한 사람에게 가하는 끝을 알 수 없는 공포의 치도곤이 그동안 우리를 잠식하고 있었던 망각의 시간들을 다시 기억하게 해주고자 한다.


사람은 도리없이 죽겠구나 싶으면 무념무상에 빠진다. 그런데 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지금이 너무 고통스럽다면 그건 정말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영화에서 고문기술자와 얼치기 공안요원이 대비해서 보여주는 고문장면이 그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앗을 생각이라면 그냥 물속에 처박아 두면 그걸로 끝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죽일 듯 살리고 살려줄 것처럼 하다 다시 고문을 가하는 일련의 행위가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다. 시간이 정해져 그냥 참으면 풀려나겠지라는 희망조차 없이 개처럼 기술적으로 고문을 당하는 건, 차마 있을 수 없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이 영화는 고문을 당하는 김종태와 고문을 가하는 사장 이하 5명의 직원, 그리고 고문기술자가 등장한다. 그들의 처지는 정반대인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같은 입장일 수도 있다. 때리고 맞는 단순한 이분법적 가름이 아니라 그들은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할 뿐이다. 하위직은 진급을 위한 실적쌓기로, 윗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잘보이기 위해, 혹은 말로만 애국을 위한다는 자기함몰적 신념으로, 그리고 고문기술자 이두한은 일종의 자기 과시로 그토록 모질게 고문을 자행한다. 그리고 김종태 역시 그토록 갈망하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믿음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 만약 김종태가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그곳에서 나와 전향이라도 했다치면 이 영화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최소한 남영동이라는 공간에선 그 누구도 승리를 하지 못했다. 결과론이지만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김종태(김근태)는 그곳에서 살아서 나왔고, 나중에 장관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그 대신 고문기술자 이두한(이근안)은 행방이 묘연한 채 사람들의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그날만을 손꼽으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승리자를 가늠하기 위해 만들어진 액션 히어로 영화는 결코 아니다. 누구든지 남영동으로 끌려갈 수 있었고,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을 현장에서 악행을 당할 수도 있었던 그때를 조명하고자 한다. 당시 남영동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중년 남자를 향해 주먹질을 했던 사람을 승리자라고 할 수 없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작년 타계한 고 김근태 의원을 또한 승리자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 일이 발생한 장소가 20여년전 대한민국 중심지인 용산 남영동 어느 공간이라는 건 대단히 슬픈 일이다. 엔딩에 여러 명의 증언이 나온다. 다들 비슷한 고문의 경험이 있다. 그들은 한때 “누군가”로부터 “빨간 딱지”를 부여받고 모진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누군가”들이 여전히 그들과 더불어 숨을 쉬고 혹은 아직도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난 그래도 떳떳했다”고 한다면, 그게 더 슬픈 일이다. 그리고 그 지우고픈 검은 그림자들이 오늘날에도 망령처럼 우리 곁에서 구걸하고 있는 상황이 더더욱 슬픈 일이다.


영화는 볼수록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고 혹은 제발 어디선가에서 흑기사라도 나와 구출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영화 중간에 몇 장면에서 일말의 희망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나왔다. 심지어 요원들에게 제발 긍휼의 자비라도 베풀어주길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 기대감은 허망한 것이지만 그것조차도 없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배우들의 고생이 눈에 확연히 들어난다. 그래도 그들은 합을 짜놓아서 연기를 한 것이고 정말 못 견딜 것 같으면 잠시 컷을 외치고 쉬면 되지만 현실에선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남영동1985 (2012)

Namyeong-dong1985 
9.4
감독
정지영
출연
박원상, 이경영, 명계남, 김의성, 서동수
정보
드라마 | 한국 | 106 분 | 201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