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백자의 사람 : 조선의 흙이 되다 - 순수함앞에선 감정의 골

효준선생 2012. 7. 17. 00:33

 

 

 

 

 

영화 백자의 사람의 부제는 조선의 흙이 되다로 되어 있다. 1914년 일본의 어떤 산 중턱에서 두 남자가 이런 얘기를 나눈다. 자신은 조선으로 가서 임업연구소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그리고 카메라가 오른쪽으로 이동하자, 눈에 익은 산하, 바로 조선땅으로 바뀌었다. 독특했다. 그리고 영화 중반부, 한 일본여자의 죽음 뒤 같은 방식으로 조선에서 눈에 익지 않은 산하, 곧 일본으로 되돌아 왔다.


이 영화의 시작은 오묘했다. 최근 한국과 일본의 몇 가지 갈등요인이 있었기에 더욱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멀쩡한 일본 사람이 왜 한국(조선)의 흙이 된다는 걸까 하는 의문이 영화를 보는 내내 풀리지 않고 뇌리 밖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1914년이면 경술국치가 있고 겨우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제아무리 총칼을 들이밀며 조선의 백성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하더라도 조선 백성의 눈에 일본인들이 고이 보일 리 없었다. 이 영화 초반부, 당시 경성의 모습으로 전차가 세종로와 종로2가를 지나는 장면이 나오고 지금은 사라진 조선총독부 건물과 악명 높았던 종로 경찰서의 모습이 비록 세트라는 게 확연하게 드러나지만 나름 이채로웠다. 특히 조선 땅에 와서 울창한 나무를 심겠다는 타쿠미의 한국 사랑의지 특히 조선말을 배우며 실제 사용하는 장면은 매우 경쾌한 출발신호였다. 


그러나 역사의 검은 물결은 그 혼자서 막을 도리가 없었다. 영화의 한 장면, 타쿠미의 상사는 이런 말을 했다. 미국산 나무가 빨리 자라니 이걸 심어야 빨리 벌채를 해서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목재를 조달할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조선 땅을 보는 사관을 대표적으로 의미하고 있으며, 여기에 반해 그냥 푸른 숲을 위해 식목하자는 타쿠미의 의견은 어찌보면 유아적 발상인 셈이다.


제목만 보면 임업연구소로 파견나온 일본인이 조선의 백자를 보고 도자기를 굽는 陶工이라도 되었나 싶지만, 그런 장면은 없다. 그저 흔하게 보이는 백자를 보고 감탄하고 여기저기서 백자를 모아다 조선민족미술관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만 보일 뿐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를 제외한 다른 일본인들의 비아냥과 조선인에 대한 경시적 태도가 계속됨에도 그는 한결같이 순진한 눈빛만 내보내는 게 아쉽기만 했다.


타쿠미가 지배국가의 선한 외톨이라면 청림은 조선 백성중에서 시대의 흐름에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지는 않는, 그래서 친일파라는 소리마저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소시민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푸른 숲이라는 의미의 청림은 아들이 일으킨 사건을 계기로 약간의 전향을 시도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바꿔 보겠다며 외세에 반대하는 인물은 결코 아닌 듯 싶었다. 친한 친구가 일제군인의 흉탄에 죽었는데도 남들 그러하듯 조금 슬퍼하는 것 말고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그보다 타쿠미의 입장과 일상에 더 관심을 보이는 이상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시대와 민족을 넘어선 찬란한 우정의 일환인지, 아니면 이 영화가 일본 감독과 스탭에 의해 기획, 제작된 영화라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지나치게 나르시즘적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보였다.


일본인의 습성이라고 할 수 있는 몇 가지 장면이 당시 조선백성들의 그것과 비견되어 묘사되는 장면, 靈柩를 따르는 장면, 사람 없는 곳을 찾아가 우는 타쿠미 어머니의 모습등이 여전히 이질적일 수 밖에 없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보여주는 등 영화는 나름대로 객관적 시선에서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양국의 이야기를 담고자 애쓴 흔적이 보였다. 그러나 한정된 인원들이 때와 장소에 구애없이 지나치게 알뜰하게 등장하면서 실소가 터졌고, 일본 영화임에도 자꾸 한국인적 관점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되는 불편함이 없질 않았다.


이 영화는 “전쟁은 나쁘다. 그러나 그 전쟁을 일으킨 사람은 따로 있으며, 착한 사람도 많다. 그러니 이젠 나쁜 방향보다 좋은 쪽을 바라보면 안되겠나”라는 질문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쩌겠나. 때린 사람은 쉽게 잊을 수 있어도 맞은 사람은 결코 쉬이 잊을 수 없는 게 인지상정이니, 그 시간은 그 무엇보다 더디 올 수 밖에 없다. 단지 이런 영화가 그 시간을 조금 앞당기는데 도움을 될 수 있을지, 만약, 조선의 누군가가 (예를 들어 청림같은 젊은이가) 일본에 가서 일본의 땅과 민예를 사랑하여 타쿠미 같은 행동을 했다면, 우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참으로 풀기 어려운 난제다.  

 

 

 

 

 

 

 

 

 


백자의 사람 : 조선의 흙이 되다 (2012)

9.3
감독
타카하시 반메이
출연
요시자와 히사시, 배수빈, 정단우, 곽민호
정보
드라마 | 일본 | 118 분 | 2012-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