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 그 옛날 세운상가를 떠돌던 때

효준선생 2012. 7. 15. 00:35

 

 

 

 

 

지금은 방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마우스를 몇 번만 클릭하면 못 찾을 게 없는 세상이지만, 80년대만 해도 까까머리 중학생들에게 성인들만의 세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란 거의 없었다. 삼촌이나 형들이 마치 자기들만 어른이라도 되는 양, 어디서 구했는지 알 수 없는 외설적인 성인 잡지 몇 권으로 어린 아이들의 눈 앞에서 홀리면 나도 저런 것 쯤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어 하며 어금니를 깨물지만 현실은 막막했다. 개중엔 실천에 옮기는 아이들도 있어, 떠들기 일쑤인 쉬는 시간이면 어디서 구했는지, 벌거벗은 여자들이 야릇한 포즈를 취하는 사진으로 가득한 잡지를 돌려보며 히히덕거리곤 했다. 그때는 그런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대체 어디서 그런게 났는지 궁금해하거나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반토막이 난 세운상가, 뻘쭘하다 못해 불쌍한 느낌마저 드는 지금의 잔디밭이 있던 자리엔 시멘트로 타설된 몇 층으로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그런 공간이 있었다. 대개는 전자부품상들이 밀접한 곳인데, 벌집같은 구조인지라 상주인원이 아니고서는 전에 한번 갔던 가게를 다시 찾는다는 게 정말 어려웠다. 그런데 그 전자부품상에서 멀지 않은 곳엔 함부로 가서는 안된다는 전언이 흘러나왔다. 아는 형이 그러는데, 좋은 거 있다며 팔을 잡아 끄는데, 다들 속아서 엉뚱한 걸 사온다는 말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거란 무엇일까? 성인비디오가 대부분이었다. 9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 몰아닥친 비디오는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를 안방으로 끌어들였으며, 어찌된 영문인지 비디오는 아이들은 보면 안되는 이상한 물건으로 낙인이 찍혔다. 하지만 하드웨어만 있으면 뭐하겠나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는 틈을 노려 말도 안되는 영화들이 안방으로 기어들어왔으며 위에서 말한 빨간 딱지가 붙은 놈들은 웃돈을 얹어서도 살 수 없는 귀한 물건이 되고 말았다.


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는 바로 이 시절, 청계천 세운상가에 만연되어 있던 불법 비디오 제작자와 배우, 그리고 선을 놔주는 카페 여사장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 경태는 불법 비디오를 찍은 돈으로 먹고 살며 마지막으로 큰 거 하나 해서 목돈을 쥐어보려고 한다. 여기에 돈을 벌어 마카오로 가려는 배우 지망생 주리와 의기투합, 이들은 끝내주는 성애물을 촬영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동안 모은 돈으로 사들인 비디오방의 잔금도 치루지 못한 상황에서 깡패들이 몰려와 경태를 구타하고 빚을 갚으라며 닦달을 하는데, 마음이 급해진 경태는 다방 여주인의 권유에 따라 해서는 안될 촬영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이 영화는 불친절하다. 에로틱 불량코디미라는 푯말을 달고 있는데 경태가 조잡하게 만드는 불법 비디오의 내용만큼이나 본편도 그다지 완성도가 높지 않다. 영화 속 영화의 장면이 그 당시 비디오처럼 만들기 위해 실제 핸디캠으로 촬영했다고 하는데, 여배우의 속살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거나 야릇한 체위를 보여주는 등 조금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들 젊은이들의 일상 자체가 그렇게 불안하고 불편하게 살았음을 반영하는 셈이다. 돈을 버는 족족 고리대금업자에게 떼이고, 배우 하겠다는 여자도 여전히 머리에 든 것 하나없이 나오고, 이들 위에 있는 다방 여주인의 심상치 않은 눈빛은 그야말로 악어와 악어새인 셈이다.


이 영화의 결말은 예상했던 바다. 돈을 벌기 위해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느끼게끔 하는 당시의 사회상, 그리고 그런게 암묵적으로 용인됨으로써 그렇게 만들어진 불법 비디오나 즐기며 살라고 부추키는 정치인들, 3S로 대변되는 세월 속에서 공급업자와 소비자나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모르핀처럼 우리 곁에 왔다가 골수를 빼앗아 갔던 컨텐츠들, 지금은 안방에서 이것들을 검색이라는 곱상한 용어로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공급자들은 여전하고 단지 수요자들은 굳이 세운상가의 뒷골목을 헤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된 것 뿐이다. 그래서 세운상가가 철거의 운명이 된 것은 아니겠지. 누군가에겐  욕정의 아이콘이었던 그곳을 추억하며.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2012)

8.1
감독
봉만대
출연
고수희, 이무생, 티나, 심재균, 김정석
정보
코미디 | 한국 | 89 분 | 2012-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