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것을 훔친다는 건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힘들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누군가가 훔치는 장면을 보는 것 역시 또한 웬만한 인내심이 아니고서는 힘들다. 마치 자신이 훔치는 것 같은 아슬아슬함 때문이다. 왜 그런가 하니, 들킬 염려가 고스란히 전이되기 때문이다. 들켜도 내가 들통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심리학에선 동조라고 얘기한다. 내 마음속에선 첫 번째 것이 맞는 것 같은데 다들 두 번째 것이 답이라 하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두 번째 것을 고르게 된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왜 영화 도둑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이 영화에선 10인의 도둑들이 등장한다. 사연도 다르고 특장점도 다르다. 전체적인 얼개는 케이퍼 무비의 전형이라고 불리는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어쩌면 아류작 한 편이 나왔겠군 이라는 선입견을 어느 정도 두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런데, 좀 달랐다. 우리말을 하는 우리(?) 배우라서가 아니다. 중국인 배우도 합류하고 대사엔 중국어도 섞여 나왔다. 물론 배경도 마카오와 홍콩등이다. 그런데, 이 영화 낯선 듯 낯익다. 액션장면에서는 미션 임파서블이나 본 시리즈, 솔트 같은 영화도 생각이 나고, 80년대를 호령하던 홍콩 느와르 영화도 얼핏 섞여 들어간 듯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액션뿐이라면 이 영화가 갑이 되기엔 어설픈 장면도 보이지만, 그런 것들을 커버해줄 만큼 독특한 배우들만의 캐릭터가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캐릭터 무비다. 각각의 등장인물의 성격을 어느 정도는 대변해줄만한 닉네임들, 수장인 마카오 박, 팹시, 뽀빠이, 예니콜, 잠파노, 씹던 껌, 앤드류, 조니, 줄리, 그리고 첸까지. 한국과 중국에서 온 배우들이 이합집산 하는 과정속에서 이들의 캐릭터들은 처음의 그것을 끝까지 유지시키려 하지 않고 마치 트랜스포머처럼 변신을 한다. 그게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뒤틀리게 만드는 재미다. 이런 류의 영화는 마지막 승자를 맞히는 게 가장 큰 재미인데, 사실 대부분의 관객이 바로 “그(그녀)”가 될 것이라고는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해피엔딩은 나의 것”이라고 줄기차게 말해보지만 그 말에 수긍할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도 한 방 먹은 것과 같다. 같은 팀 안에서 서로를 믿을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이들 각자의 몫이었다. 離間을 서슴치 않고 背信은 이들이 공통으로 가진 특기인 셈이다. 그런 와중에서 진심이 얼핏 보이는데, 그 진심마저도 이걸 믿어야 하나? 싶은 게 또 이 영화의 재미다.
환언하면, 이 영화는 단순히 엄청난 캐럿을 자랑하는 다이아몬드, 일명 "태양의 눈물“을 훔치는 과정이 다가 아니라, 모래처럼 흩어졌던 스페셜리스트들이 ”훔침“이라는 여과기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밝혀내는 과정이 이 영화의 본 모습인 셈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접할 때 과연 저 “태양의 눈물”은 누구의 손아귀에 안착할 것이냐만 볼게 아니라 서로간의 관계에 대해 잘 살펴보면 흥미로운 영화가 될 것 같다. 더운 여름이다. 영화 도둑들은 "태양의 눈물"을 훔치고 그 대신 관객들에게는 통렬한 재미를 선사할 것 같다.
사족이지만 극중 중국어를 구사하는 한국인 배우 중에 마카오 박으로 나온 김윤석의 중국어 발음은 교과서적이다. 아마도 아나운서 출신에게 배운 듯 매우 또렷하게 들렸다.
도둑들 (2012)
The Thieves
9
'소울충만 리뷰 > [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우쿨렐레 사랑모임 - 완정한 선율, 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0) | 2012.07.12 |
---|---|
영화 리미트리스 - 인간의 잠재능력에 한계치는 없다 (0) | 2012.07.12 |
영화 에브리씽 머스트 고 - 비우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네 (0) | 2012.07.11 |
영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 인생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0) | 2012.07.10 |
영화 로스트 인 베이징 - 물욕과 본능사이에서 몸부림치다. (0) | 2012.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