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에브리씽 머스트 고 - 비우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네

효준선생 2012. 7. 11. 00:01

 

 

 

 

적나라한 알몸뚱이로 세상에 나와 나이를 먹으며 주변엔 불필요한 물건으로 가득찬다. 하지만 쉽게 버릴 수 없는 이유는 그 물건에 자의적인 추억을 몇 개씩 달아 놓았기 때문이다. 마치 그 추억을 없애면 자신도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때문에.


영화 에브리씽 머스트 고는 바로 이런 늘 자신 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멀어질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어떤 모습인지를 한 중년 남성을 통해 담담하게 그려낸 드라마다. 많은 배우가 등장하지도 않으면서도 할 말은 다하는, 그러면서도 무척이나 철학적 통찰을 가진 영화. 그 정도의 나이를 먹고 살았다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인지라 보는 내내 나도 저 사람과 다를 것 없는데 하는 생각으로 화면을 주시했다.


남자에게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직장이다. 십 수 년을 한결같이 회사만을 위해 일했던 간부급 직원이 하루 아침에 정리 해고 통지를 받는다. 그리고 회사에선 선물이랍시고 스위스 칼을 선사한다. 남자는 회사에서 나오다 상사의 차를 발견하고 스위스 칼로 타이어를 찢어놓는다. 억울한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고 집에 돌아온 그를 맞이하는 건 여우같은 아내가 아니라 자신이 애지중지 모아놓은 물건들이다. 그리고 아내는 없고 집은 잠겨있다. 앞 마당에 널부러진 채로 있는 잡동사니들 사이에서 남자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시작일 뿐이었다. 차량도 회사에게 반납해야했고 카드 속 돈도 모두 결제를 못하도록 동결시켜 놓았다. 홧김에 집어 던진 휴대폰은 산산조각이 났고, 평소엔 친하게지내던 이웃들은 마당에서 어슬렁 거리는 그를 경찰에 신고까지 해버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은 건, 바로 술이었다. 얼마 없는 현금으로 그는 술을 사다 먹었으며, 정리를 한답시고는 절대로 술병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술은 그에겐 기호식품이 아닌 한 몸 같다는 느낌이었다. 회사에서 해고된 것도, 아내가 남편의 물건을 모두 내다 버린 것도 다 술 때문임을 그는 정말 모르는 것일까 나중에 술 한 캔 살 돈 마저 떨어지자 편의점에서 행패를 부리고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술 구걸까지 한다. 그리고는 금단증세에 시달린다.


궁지에 몰린 그는 앞 집에 새로 이사온 사진 강사와 동네를배회하던 흑인 꼬마에게서 사는 것에 대한 조언과 격려를 얻지만 그의 행동은 별로 달라질 것들이 없어 보였다. 여전히 그의 곁엔 버려야 할 것들이 쌓여있고, 그건 물건 뿐이 아니라 그동안 남자가 살아왔던 삶의 잘못된 습관, 인식, 그리고 잘못은 깨닫지 못하는 우매함이었다.


이 영화의 결론은 어쩌면 현실적이지 않은지도 모른다. 남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다들 정상적인 자리를 찾아갔다. 그러나 언젠가 재회할 것이라고 믿었던 아내와 그리고 가장 신뢰했던 친구의 배신은 왜 그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냐 라며 질책을 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가장 아끼던 물건 마저 타인에게 나눠준 그. 이제 그의 곁엔 무엇이 남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결 편해진 얼굴과 생은 이제 완전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알려주고 있다.


인생은 空手來空手去라고 하지 않았나 아직 공수거는 아니겠지만 태어나서 처음 걸음마를 배우고 사람과 관계를 맺었던 그때로 돌아가 인생 제2막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면서 자꾸 책상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나를 둘러싼 수만가지 물건들 중 정말 버리기 아까운 것들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저걸 다 버리면 나는 얼마나 후회를 하게 될까 모든 것은 사라질 지도 모르지만 아직 끝이 아닌 이치와 마찬가지로 없으면 다시 있게 만들면 된다. 이 영화의 깨달음은 바로 이것이다.

 

 

 

 

 

 

 

 

 

 

 


에브리씽 머스트 고 (2012)

Everything Must Go 
8.2
감독
댄 러쉬
출연
윌 페렐, 레베카 홀, 글렌 호워튼, 셰넌 위어리, 제이슨 스피삭
정보
드라마 | 미국 | 97 분 | 2012-07-12